내면세계의 탐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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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시의 <월평>이나 또는 <시평>의 효용에는 한계가 있는 일이겠지만 되도록 독자와 시인 서로가 그때 그때마다 시의 기쁨을 나누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시를 키워나가는 데에 그 뜻이 있을 것이다.
이 시평을 쓰는 방법으로서 필자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무슨 시를 대하든 그 시 하나하나에 즉해서 필자의 평이랄까, 감상이랄까 하는 것을 적으려고 한다. 이를테면 되도록 객관적인 관점에서 시를 보고자하는 것인데 개성과 경향이 모두 다른 여러 시를 한꺼번에 조감하려는 자리에서는 이 방법 이외의 다른 자세는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8월에 나온 시를 대충 읽어보고 나니 많은 시인들이 다루고있는 시의 주제와 소재에 있어서 현저하게 눈에 띄는 한 방향을 볼 수가 있었다. 이 말은 특히 시단에 「데뷔」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는 신인군에 적용되는 듯 싶지만, 모두가 소위 <내면세계>의 탐구라고 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시인의 눈은 눈부실이 만큼 어지러운 외부세계의 현상에서, 그 현상이 비치고, 또 그 현상에 대응할 내면의 <시공>을 들여다봄으로써 생명현상을 표현코자하는 이 경향은 마치 한 유행이랄까, 또는 시의 시류를 이루고 있는데, 그 주역이 주로 신인군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에 으레 반성되어야할 점이 반성되고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시사의 한 진화 내지 성장의 과정을 뚜렷이 실감할 수 있을 듯 싶다.
우선 약5, 6년 전만 하더라도 오물처럼 눈에 띄던,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가짜 난해시는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제각기 어느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자기의 내면세계를 투시하는 경우인 만큼 그 어느때 보다도 개성적이어야 할 시가, 모두가 비슷비슷한 발상과 시어와 은유를 구사함으로써 일종의 집단적인 『공동의 몰개성』의 상황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는 점은 확실히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주제의 선정에 어느 정도의 반성은 보이면서도, 그 추구에 있어서 순수·가열한 노력이 미흡한 상태에 머물러있다. 실상 이점이 정말 힘들고도 보람있는 과제가 될 것이다.
8월의 시에서 가강 큰 감명을 받은 것은 「현대시학」에 실린 신동집씨의 「산중시법」을 비롯한 5편의 시다. 마을과 산과 여름과 생활과 관조를 담담히 읊어나간 씨의 시는 이젠 마치 고목의 연륜을 보듯 자연스럽고 무게있고 조밀하다. 그중 「산신령」에서 한 귀절을 인용해보자.
여름날 산에 올라가면 산신령이 반가운 헛기침을 하며
로마네스크
조각의 웃음을 웃고 있다.
이 삼분에 한 두 마디 말을 건네며 장기를 두는 일도 심심찮은 일이다.
지루하면 바위틈에 내려가 물을 맞으며 술이나 두어 잔 나누고
가벼운 낮잠이나 한 팔분 청한다.
(중략)
한 뭉치 프라티나의 구름이
산정에 걸려 쉬고 있다.
거인의 사상이다.
격조 높은 시다. 산신령은 신령이기 때문에 헛기침과 통한다. 기침이란 말은 메아리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킴으로써 우리 마음속에 산의 「이미지」를 메아리지게 한다. 「프라티나의 구름」이란 한 「수사」이겠지만 이 절약된 「장식음」엔 가히 백금의 효과가 있다.
이런 시를 놓고서 절박한 현실감각이 없다고 푸념할 필요는 없다. 소용돌이치는 현실적 현상을 체험하고, 넘어서고, 그 체험을 심화하는 과정이 없이는 결코 이런 시가 나올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하면 될 것이다.
같은 시지에 실린 박의상씨의 「두번째의 허무」를 포함한 5편의 시도 힘들인 작품이었다. 문맥이 너무 주관적인 데가 있고, 또 다소의 감상적 경향도 없는 것은 아니나 이르나 각박한 현실감각과 종교적인 상념과의 갈등이 진지하게 표출돼 있다. 「캔디」란 시의 『셀로판지처럼 얇고 아른한/저녁 공기가 빛나는 속에서/움직이고 생각한다. 그리고/뛰어다닌다. 캔디를 던지면서/캔디를 쫓아다니면서…』와 같은 시구엔 가벼운 「유머」가 깃들여있다.
같은 시지의 김종철씨의 「서울의 유서」도 읽는 이의 가슴에 호소해오는 시였다.
『도착증의 언어들은 곳곳에서 서울의 구강을 물들이고 <중략> 오오 집집의 믿음의 우물물은 바짝바짝 메마르고 <중략> 날마다 죽어서 다시 살아나는 양심의 밑둥을 찍어 넘기고…』이런 귀절에서 볼 수 있는바와 같이 적절한 「이미지」가 시의 끝까지 이를테면 합리적으로 잘 배열돼있다.
시에 합리란 말은 우습지만 시가 전체적으로 잘 균형이 잡혀있다는 뜻이다. 씨의 역량을 짐작할 만하다.
「현대문학」에 실린 마종기씨의 2편의 「선종이후」 부친과의 영별을 아름답게 노래한 이 시는 주제면을 떠나서, 시로서도 매우 세련돼있다. 그중에 매우 매혹적인 시구가 있다.
냉정하라.
꿈에 냉정하라.
음미해 볼수록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마음 이끌리는 시구다.
같은 월간지의 김원호씨의 「별」같은 내면탐구계열의 시 가운데서도 「이미지」의 순도와 상징성의 깊이에 있어서 특히 눈에 띄는 수작이었다.
이 밖에 정현종씨의 「사랑 사설하나」의 1편, 김해성씨의 「허전한 내역」, 김후란씨의 「목련」 박보운씨의 「아침 함상에서의 즉흥」 황운헌씨의 「초록빛 환상」, 그밖의 시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으나 지면관계로 약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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