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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석탄차가 달리는 끝없는 평원|김찬삼 여행기(호주에서 제12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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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가도가도 끝이 없을 것만 같은 평원에 기하학적인 일직선으로 뻗친 철로. 이 「레일」은 지상낙원인 이 땅에서 그대로 천국으로 이어진 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몽상을 불러일으킨다. 철로 가에서 노닐던 「캥거루」는 기차에 놀라서 춤추는 것처럼 껑충껑충 달아나는 광경이 심심치 않다.
서쪽도시 「퍼드」를 아침 일찍 떠난 다음날, 오후 늦게 서호주와 남호주의 주경을 넘는다. 저녁에야 「쿠크」역에 도착했는데 이 역의 이름은 철도시설에 공로가 큰 전 수상「조셉·쿠크」경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그리고 「울디어」는 사구지대로서 원주민인 「아보리진」의 말로는 『물이 있어 사람이 모이는 곳』이란 뜻으로서 불모지대의 「오아시스」나 마찬가지.
여기서 잠시 쉴 때 저만큼 원주민의 집이 있기에 들러서 물을 좀 얻어먹을 수 없느냐고 했더니 이 집 아낙네가 검은 입술에 진주와도 같이 흰 이를 쌩끗 드러내면서 방금 우물에서 떠왔다는 시늉을 하며 냉수를 한 바가지 부엌에서 들고 나왔다. 목이 말랐기 때문이 아니라 그 물맛이 매우 좋았다. 이렇게 물이 좋으니까 원주민들이 여기 모여들어 사는가 보다.
딴 지방의 원주민들보다 미인이 많아 보이는 것도 물이 좋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기차는 또 달리기 시작했다. 원주민의 복지를 위해서 일생을 바쳤다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는 「베이츠」역, 이 나라 최대의 경마인 명마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는 「타쿨라」역을 지나 「위라말라」호에 이르렀다. 이 호수 이름은 「아보리진」 원주민의 말로 『저 나무를 보라』라는 뜻이라고 한다. 매우 시적인 이름이다.
이 원주민에게는 나무가 있는 곳이 살기 좋으니까 「포에지」보다도 나무를 보고 감탄하여 『저 나무를 보라』고 외친 것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멋있는 이름이 아닌가.
이 호수는 백조가 헤엄치는 그렇듯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비 올 때만 물이 괴고 곧 말라버리는 염호이다. 이윽고 얼마전 내가 「버스」로 종단할 때 지났던 자동차도로가 보였으며, 「퍼드」를 떠난 지 사흘째 대낮에는 「포트피리」에 이르렀다. 여기서부터는 광괘 열차로 갈아 타게된다.
이 대륙은 식민시대 초기부터 각 주마다 행정과 경제의 체제가 다르며 철도도 광괘·협괘·표준괘도 등 무려 다섯 종류가 있어서 주사이의 연락이 힘들다. 그래서 시간표에는 「기차 바꿔 타기」란 말이 붙어있다.
이런 불편을 없애기 위하여 2차대전후 표준궤도공사를 하긴 했으나, 이 나라는 본디 개척의 시일이 짧았고 따라서 갑자기 근대화했기 때문에 철도의 전성기를 이루지 못하고 항공기와 자동차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그래서 특히 자동차는 한 사람 앞의 소유비율이 미국 다음가도록 널리 퍼져있다.
이 나라의 철도가 발전하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는 주마다 제멋대로 다른 궤도를 써서 같은 차로 아무 데나 다니지 못하는 데도 있다. 이곳 철도는 주와 연방에서 경영하고 있는데 간선 주요 차 이외에는 아직도 석탄차가 쓰이고 시설이 빈약하다. 승객들은 장거리이외에는 자동차를 이용하기 때문에 수지관계로 운영이 어렵다고 한다. 남북 종단 철도도 계획한지 오래지만 아직도 미완성 상태에 있다.
그런데 「포트피리」에서 갈아탄 철도는 「레일」폭이 넓으니 객차도 크며 설비들이 색다르다. 화장실이 남자용은 하나지만 여자용은 둘인 것도 재미있으나 내부의 조명이 새로웠다. 전체등 세수용 등 면도용 등이 각기 따로 있는가하면 전기면도를 하도록 「스위치」까지 갖추어져있다. 그리고 앞의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스테인리스」로 된 세면대가 회전되어 나타나고 끝내면 다시 접게 되어있다. 용변을 하려면 세면대 바로 아래 있는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스테인레스」의 변기가 나온다. 물론 서양식 변기인데 이렇게 문명의 이기는 발달했건만 우리인체의 구조는 그대로 원시적이니 좋은 「콘트라스트」가 되지 않을까. 문화인의 화장실이라 깨끗하긴 하지만 재미있게도 낙서와 성화가 그려져 있었다. 흔히 어린이들이 그리는 모양의 남녀의 성기 그림은 어느 나라나 공통된 듯. 이 그림을 보느라니 문득 저 유명한 「스페인」의 화가 「미로」가 역시 어린이가 잘 그리는 남녀의 성기를 그대로 본떠서 그 사랑을 상징한 『로미오와 줄리엣』이란 「유머러스」한 그림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아, 인생은 즐겁다. 세계여행은 더욱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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