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In 한인타운] 나이트클럽 잔혹사

미주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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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디스코 볼이 그리워."

지난 연말이었다. 한때 LA한인타운 3대 나이트클럽의 사장이었던 Y씨가 4년 만에 전화를 걸어왔다.

디스코 볼이 뭔지 몰라 물었더니 "나이트 천장에 달린 번쩍거리는 둥그런 거"란다. 작은 거울조각을 붙인 원형 조명기구라는 원래 뜻은 나중에 알았다. 디스코 볼은 그에게 유흥업소를 주름잡던 시절의 상징물이었다.

오랜만의 전화에서 그가 예전 기억을 곱씹은 이유는 기자가 쓴 글 때문이었다. 그와 한때 경쟁관계였던 'V' 나이트클럽 K사장이 집에서 권총 자살했다는 기사를 봤단다.

"남일 같지 않네. 근데, 난 괜찮아. 다 때려치고 시골에 와서 살아. 골프나 치고 걱정도 없고. 건강하고, 좋아."

말보다 목소리가 편해 안심됐다. 언제 소주나 한잔하자 끊고는 까맣게 잊었다.

그리고 8개월이 지난 얼마전. 동종업계 라이벌의 횡사를 안타까워하던 그도 죽었다. 10줄, 233자의 짧은 부고에 그의 56년 인생이 담겼다. 급하게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다. 심장마비였단다.

남들에겐 그저 알림 기사였겠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의 죽음은 타운 나이트클럽 중흥 시대의 종말을 뜻했다. 타운 최대 규모 나이트클럽인 웨스턴 선상의 L업소의 전 사장인 K씨가 3년 전 심장마비로 가장 먼저 떠났다. 그리고 지난 연말 K씨, 올해 Y씨의 변고가 이어졌다. 죽음들은 갑작스러웠지만, 업계의 쇠락과 닮았다.

3개 업소는 2005년 무렵까지 최고 인기를 누렸다. 웨이터들에게 '유흥생'으로 불리던 돈 많은 유학생들이 평일에도 물주 노릇을 해줬다. 아내외의 여자와 만남을 노린 유부남들도 VIP 고객들이었고, 돌아온 싱글녀들이 이들의 짝이 됐다.

사람이 많이 모이니 문제도 끊이질 않았다. 마약, 불륜, 총기 사건 등등 온갖 사회 문제의 집합체로 불렸다. 당시 언론들은 나이트클럽이 사라지면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될 듯이 연일 기사로 두드려댔다.

8년여가 지난 지금, 이제 나이트클럽은 더이상 욕먹지 않는다. 대신 퇴물취급을 받고 있다. 장사가 되지 않아 주말 사흘만 문을 연단다. 술 값은 20년 전보다 싸다. 그나마 여성고객들은 무료다. 그런데도 주말에 테이블을 절반 채우기가 어렵단다.

향락 집합소가 사라졌으니 퇴폐문화도 없어져야 앞뒤가 맞다. 그런데, '그쪽 바닥 사람들' 말로는 그게 그렇지 않다고 한다. "동시다발적 향락"이 벌어지고 있단다.

청춘 남녀가 나이트클럽에서 눈 맞는 일은 이제 없다. 대신에 과거 회식 2차 장소나 가족 모임장소였던 노래방이 요즘엔 도우미들을 기다리는 남성전용 나이트가 되어버렸다. 여성들은 이제 돈을 받고 즉석 만남을 한다.

2.7스퀘어마일의 좁은 타운에 업체가 40개가 넘고, 도우미는 700명에 달한단다. 최근에는 협회까지 생겼다. 한 도우미 업소 사장은 "한달 최고매상 기록을 세운 도우미가 1만9000달러"라고 했다.

마약도 멀리 못갔다. 한 택시기사는 "심야에 혼자타서 후미진 골목을 가자는 단골손님이 종종 있다"고 했다. 일명 마약 쇼핑이란다. 그 고객들은 타운 유명인사부터 아줌마들까지 다양하다고 했다.

Y씨가 나이트클럽 사장 시절, 업계의 문제점을 썼던 기자의 글에 그는 이렇게 반박했다. "그 짓들을 내가 했나? 인간 덜 된 '손님 놈'들이 했지. 나이트클럽이 무슨 죄야."

마지막 통화에서 남긴 그의 말의 의미가 그래서 새삼스럽다.

차라리 디스코 볼이 그립다.

정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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