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기 맞는 통일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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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공동 토론>
황산덕 교수 <법학· 성균관대>
김영준 교수 <정치학· 국방대학원>
김하룡 교수 <정치학· 고대>
박봉식 교수 <국제 정치학· 서울 문리대>
손제석 교수 <국제 정치학· 서울 문리대>
이번 8·15경축사에서 밝혀진 박대통령의 『평화통일의 기반조성을 위한 접근방법에 관한 구상』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아직 이 구상의 뜻하는바에 관한 정부측의 아무런 공식적인 설명이 없기 때문에 모호한 점이 너무나 많다. 다만 여당인 공화당 대변인의 이 「구상」에 대한 논평에서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등의 개정의 경우를 운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단순한 기념사를 위한 것이거나 외교기술상의 불편을 덜기 위한 것 이상의 것 인 것 같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의 평화통일 구상을 긍정적으로 음미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즉 첫째로 『새로운 4반세기의 역사의 장이 시작되는 이 순간』이라든지 『오늘로써 시작되는 앞으로의 4반세기를 넘기면』 서기 2천년께가 되는데 『그때의 조국은 국토통일을 이룩한 지 이미 오래된 강력한 민족국가로서… 세계사의 주류에 당당히 참여하고 기여해 나가는 보람찬 모습으로 변모해 있어야할 것』이라는 등의 표현에서, 앞으로의 세계사와 민족의 전진적 발전을 내다보는 역사의식에서 이번의 「구상」이 발상 되었기를 바란다.
다음으로 국토통일이 「민족지상의 명령」임을 인정하나 「동족의 유혈을 강요하는 전쟁」은 피하고 인내와 양식으로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룩해야한다고 한데서, 세계정세의 흐름과 문제의 성격을 올바로 인식한 자세의 표현이라 하고싶다. 그리고 『긴장상태의 완화 없이는 평화적 방법에 의한 통일에의 접근은 불가능』하다고 함으로써 기왕에 북괴가 남침을 기도하고 도발행위를 계속함으로써 긴장상태를 조성하면서 대외적으로 펴오던 평화공세의 허구성을 단적으로 폭로하는 일방 국제긴장의 완화라는 세계정치의 일반적인 추세에 응하겠다는 전진적인 자세의 표현으로 보고싶다.
이 「긴장 완화」라는 어구를 작년 8월 23일 한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의 한 구절 즉 『한반도에 있어서 분쟁의 원인을 감소시키기 위한 장기적인 노력의 필요성을 양 대통령은 인정한다』라고 한 것과 관련시켜 생각한다면, 주한 미군 감축조치 등으로 표시된 일련의 새로운 미국정책이 한국의 안보는 「긴장완화」의 환경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과 전적으로 정책노선을 같이할 의사의 최초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엄격한 선행조건이 있기는 하나 이번 「구상」의 구체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인위적인 장벽을 단계적으로 제거해 나갈 수 있는 획기적이고 보다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 점과 제15차 「유엔」총회이래 소위 「스티븐슨」안 즉 남·북한 조건부 동시 초청안을 수락할 용의가 있음을 공식적으로 밝혔고, 세째로 『국민을 더 잘 살게 할 수 있는』「선의의 경쟁」을 하자고한 점이다.
첫째의 「인위적 장벽을 단계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획기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이란 결국 『인도적 견지와 통일기반 조성에 기여할 수 있는』것이기 때문에 북괴가 선행조건을 이행하는 경우 제시될 구체적 방안은 결국 초보적인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유엔」에서의 남·북한 동시 초청안에 『구태여 반대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15차「유엔」총회이래 사실상 수락해온 안을 국가원수가 공식적으로 선언한데 의의가 있겠다.
끝으로 북에 대하여 「선의의 경쟁」을 하자고 한 점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가장 모호한 대목인 것 같다. 「선의의 경쟁」은 「긴장완화」「평화적 통일」등과 더불어 모두 동일한 정치환경에서 쓰이는 용어이며 평화공존 또는 경쟁적 공존관계에 있는 동·서 구주의 정치상황에서 정치선전의 일반적 문구로 쓰이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 쓰인 「민주주의와 공산독재의 체제」간의 「선의의 경쟁」이란 말이 사실상으로 기존하는 경쟁적 공존관계를 인정하되 이를 정치·선전적으로 처리하려는 것인지 또는 경쟁적 공존현상을 공식적으로 양성화하여 이로써 국내 정치에도 하나의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의지와 결단의 표시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번에 제시된 평화통일의 「구상」은 설혹 그 구체적 내용이 모호하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많은 선행조건이 전제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구상」이 던진 국내·외에의 과제로서의 성격은 역사적인 것이 되리라 믿는다. 이것은 이 「구상」을 제시한 편에서 그 문제의 성격을 철저히 파악하고 역사성을 의식했든 안했든 간에 별 상관없으며 일단 제시된 이상 문제의 객관적중대성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긴장완화」「평화통일」「선의의 경쟁」등은 과거 25년간의 남·북 분단상황에서 쓰여온 용어는 아니며, 앞으로의 4반세기의 한반도상황을 표현하는 용어라고 할 것 같으면, 이것은 과거 25년간 한국의 정치체제를 조건지어 온 많은 환경의 변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인위적 장벽을 단계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방안이 진정으로 「통일기반 조성에 기여할 수」있고「민주주의와 공산 독재」간의 「선의의 경쟁」을 성공적으로 해 나가기 위해서는 과거 25년간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가 걸어온 발자취를 회고, 재평가하고 심기일전하여 앞으로 4반세기를 향한 새로운 자세의 확립이 있어야 할 것이다.
즉 이번 「구상」을 단순한 외교상의 새로운 기술적 표현으로 소극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불가피한 역사의 경쟁에서 낙후되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선의의 경쟁」에서 손해만 보는 편이 되지 앉기 위해서도 민주정치의 보다 신속한 발전과 「국민을 더 잘살게」하는 국민경제의 확립으로 새로운 반세기에 있어서 역사의 승리자로 군림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는 긍정적인 자세에서 이번의 평화통일구상을 받아들이고 싶다. <대표집필=박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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