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박계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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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뒤에는 최승대가 구름 위에 뜬 듯 하늘에 높이 달렸고, 미림을 빠져 사동의 벌을 감돌아서 여기 모단봉 밑을 흘러 남쪽으로 뻗은 패강의 녹수는 땅위의 은하였다. 그 은하 위의 성좌들처럼 범선과 「보트」들이 아득하게 아물거리며 떠돌아갔고, 능나도의 늙은 버들들은 녹색의 구름으로 엉켜져 하풍에 흐느적거린다. 높은 석벽 위에 올라앉았다는 부벽루도 을밀대에서는 백길 아래에 기둥을 잃고 물 앉은 양 지붕만이 납작하게 보였으며, 서쪽 턱 아래로는 아득한 전설과 기쁘고도 슬펐던 무수한 사화들을 이고 앉은 기자림이 흑 녹조를 이루어 넘실거린다.
일찌기 고려의 시인 김인원이 여기 모단봉에 올라와 금수강산의 명을 가진 패성의 절경을 바라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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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동두점점산이라, 읊고는 그 아랫 귀가 떠오르지 않아 자연의 위대함에 자기의 재능이 하잘 것 없음을 탄하여 붓을 던지고 통곡했다는 사실을 명희는 지금 좌우 전후로 전개된 승경을 둘러보며 김인원이와 같은 심회에 잠긴다. <「순애보」에서·193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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