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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서구의회 편싸움에 밀려난 민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지난달 30일 대구시 달서구 성서경찰서. 달서구의회 A의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직 의원이 구청 여직원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다’는 의혹의 진위를 가리는 경찰 수사에 협조하기 위해서다. 지역구에서 재선한 A의원이 추문(醜聞)에 휘말려 경찰서까지 가게 된 사연은 지난달 2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철규(56·새누리당) 달서구의회 의장은 A4용지 1장 분량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자료에는 “동료 의원이 지난해 7월 구청 한 여직원을 전화로 불러내 식당으로 데려가 술을 마시고 어두운 곳에서 껴안는 등 수차례 성추행했다”고 쓰여 있었다. 김 의장이 지목한 동료 의원이 A의원이었다. A의원은 곧바로 “김 의장의 주장은 음해”라며 명예훼손·허위사실유포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고, 수사가 시작됐다.

 두 의원은 평소 앙숙이었다고 한다. 2010년 재선에 성공한 두 의원은 같은 해 11월 달서구 성서보건지소 신축을 두고 대립하다 관계가 멀어졌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달서구청 관계자는 “새마을 관련 조례, 지역구 예산 배정 등의 문제로 2010년 6대 달서구의회가 구성된 후 여러 차례 편이 갈려 대립각을 세웠다”고 말했다. 두 의원의 다툼이 법적 공방으로 번지자 이례적인 일까지 벌어졌다. 전체 달서구의회 23명 의원 중 11명이 합심해 지난달 29일 두 의원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다음 날인 30일엔 전국공무원노조 달서지부가 두 의원의 사퇴를 요구했다.

 달서구의회의 편가르기는 이들 의원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올 초 의원들이 주민 세금(4280만원)으로 가는 해외연수까지 편을 갈라 다녀왔을 정도다. 당시 김 의장은 동료 의원 11명과 올 3월 21일 6박8일 일정으로 캐나다를 다녀왔고, 같은 날 김진섭(59·새누리당) 의원 등 2명은 6박7일간 중국으로 갔다. 이성순(56·새누리당) 의원 등 9명은 이들과 별개로 4월 23일 일주일간 프랑스·벨기에·영국을, 김철희(50·무소속) 의원은 3월 28일 나홀로 베트남을 갈 예정이었지만 건강상 이유로 취소했다. 편이 갈려 떠난 연수 역시 의원들 간 감정 다툼이 이유였다. 지난해 7월 의장 선거 직후 의원들 간 감정의 골이 파였다고 한다. 현 의장을 지지한 의원과 그렇지 않은 의원이 사이가 나빠져 서로 다른 여행지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의원들끼리 이렇게 편을 갈라 반목하는 이유는 주도권 잡기 때문이다. 달서구는 지난달 5일 인구 61만 명을 넘어섰다. 61만12명으로 전국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서울시 송파구(66만8847명) 다음으로 큰 지자체가 됐다. 한 기초의원은 “달서구 정도의 큰 지자체에서 입김 있는 의원이 되면 공천받기 수월하고 지역구에 예산도 편하게 배정할 수 있다. 시의원·국회의원·구청장까지 노릴 수 있는 발판도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편 가르기와 갈등에만 신경쓴 탓일까. 달서구의회의 실적은 초라하다. 2010년 7월 6대 달서구의회가 꾸려진 뒤 올 6월까지 의원 23명이 처리한 조례는 114건. 이는 의원이 20명뿐인 수성구(138건), 16명뿐인 동구(124건), 8명인 달성군(127건)보다 낮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총장은 “기초의회는 주민이 만든 일종의 감시기구다. 이런 감시기구를 견제할 기관이 없기 때문에 주민은 의원 개개인의 역량과 행태를 살펴 투표로 직접 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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