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수, 제자 고용해 96억 빗나간 돈벌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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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일 교수가 개설한 불법 웹하드 사이트 콩디스크. 이 사이트는 해외에서만 접속이 가능해 사법 당국의 적발을 피할 수 있었다. [사진 서울경찰청]

2006년 여름 대진대 컴퓨터공학과 김홍일(50) 교수는 미국을 방문했다. 한 동포에게서 “한국의 방송과 영화를 보려면 출시된 지 한 달이 지나서야 가능하다”는 푸념을 들었다. 그 한마디는 김 교수의 뇌리에 대박을 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번쩍 떠오르게 했고 결국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김 교수는 귀국 직후 미국과 캐나다 동포를 상대로 한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 사업을 시작했다. 2006년 11월 경기도 의정부에 사무실을 차렸다. 이어 컴퓨터 여러 대에 TV 수신카드를 부착한 뒤 국내 방송을 실시간으로 녹화해 동영상을 올렸다. 김씨의 사이트에서는 KBS·MBC·SBS 등 지상파와 케이블TV에서 방영하는 드라마·예능·교양·뉴스 방송 프로그램과 영화·음원을 실시간에 가깝게 다운로드 받을 수 있었다.

 해외에 거주하는 회원들은 방송 종료 후 30분이면 국내 프로그램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었다. "한 달 14달러(약 1만5000원)에 국내 방송을 무한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회원 수가 3만여 명으로 폭증했다.

 김 교수는 전문 컴퓨터 지식을 동원해 사법 당국의 단속을 피했다. 회사 관계자 외에는 국내에서 해당 사이트를 검색하거나 접속할 수 없도록 차단했다. 2008년부터 메인 서버를 외국에 두고 2~3년마다 도메인을 옮겼다. IP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도메인을 따라 사이트 이름도 또봐닷컴(2006년)→콩디스크(2008년 7월)→클럽나라(2011년 8월)로 바뀌었다. 또 같은 과 제자인 오모(34)씨를 서버 관리자로 고용했다. 오씨는 도메인 교체를 비롯해 서버 과부하로 인한 버그, 혹시 모를 해킹 공격에 대비한 보안 관리 등을 맡았다. 회비도 싱가포르 E결제대행사를 통해 받다가 2008년부터 김 교수 명의로 홍콩에 설립한 G페이퍼컴퍼니를 거쳐 국내로 입금시켰다.

 국내법(사립학교법)과 대학 내규상 현직 교수는 영리활동을 할 수 없다. 김 교수는 부인 김모(47)씨를 사이트 운영회사인 ㈜와이드피아의 대표로 등록했다. 이 회사는 표면상으로 소프트웨어 개발과 보안 관련 회사였다. 올해 중소기업청이 운영하는 중소기업현황정보시스템(SMINFO)에 우수중소기업 분석보고서가 올라오기도 했다.

 김 교수의 ‘은밀한’ 사업은 올해까지 7년간 계속됐다. 범죄 행각은 국내가 아닌 미국 수사기관에 의해 2011년 꼬리가 잡혔다. 미국 측이 한국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3대는 불법 웹하드 사이트를 운영하며 국내 방송사의 콘텐트 3만여 건을 무단 업로드한 혐의(저작권법 위반)로 김 교수와 제자 오씨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3일 밝혔다. 이들은 95억7490만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금액은 미국 수사당국이 국내 수사팀에 의뢰한 2008~2012년치의 회계장부만 따진 것이다. 경찰은 그가 한 해 평균 20억원씩, 2006년부터 올해까지 100억원이 넘는 수입을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방송사들이 불법 다운로드로 본 피해액은 4200억원 규모로 추정됐다.

 경찰 조사에서 김 교수는 “갑자기 사이트를 차단하면 해외 동포들이 국내 방송 프로그램을 볼 수 없어 그만둘 수가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대 이수정(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전문 지식을 활용해 수년간 경찰 적발을 피해 온 전형적인 화이트칼라 범죄”라고 말했다. 1996년부터 이 대학 정교수로 재직했던 그는 지난 1일 사직했다.

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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