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빈농에 풍요를 다지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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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인천에서 통통배를 타고 7시간쯤, 서해의 크고 작은 섬들을 비집고 내려가면 충남 서산군이북면 내리에 닿는다. 동서는 2㎞도 안되는데 길게 15㎞나 뻗은 돌기. 그 끝에서 30∼40리를 걸어야 하루 한 번 다니는 「버스」라도 탈수 있기에 아예 뱃길이 교통수단이다.
고속도로가 뚫리고 천리가 1일 생활권이라 지만 여기서는 「버스」 한대 다닐 길을 닦지 못해 장날이면 새벽밥을 먹고 1백리 길을 왕복하고 면사무소마저 40여리 거리에 있다.
신문은 며칠전의 구문으로 배달되고 편지는 으레 날짜를 지나 실기를 한다.
여기 30명의 서울대 향토개척단이 지난 3일부터 주민들과 어울려 생활을 같이하고 있다. 반농 반어의 이 마을에서 벌인 개척단의 활동목표는 농민 협동화. 이곳 사람들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지위를 향상시키고 또 국민으로서의 주체성을 지니게 하며 특히 조직화를 통하여 풍요한 농촌을 이룩하도록 이끌어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러나 15일까지 열흘 남짓한 동안에 개척단은 어떠한 성과를 거둘까.
학생들은 지난겨울에도 똑같은 사명을 띠고 이곳에 왔었다. 농사로 겨우 식량을 얻는데 불과하다면 관심을 바다로 돌려야 할게다. 이런 결론에서 부업장려 운동을 벌이었던 것인데 이에 용기를 얻은 마을 사람들은 일제 때 김을 양식해 수출까지 했던 경험을 되살려 금년에는 정부의 보조금 42만원을 받아냈다.
그것은 이 한촌에 활기를 불어넣는 커다란 원동력이 됐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단장 서병기군(미대 응미과 3년)은 고발하듯 말한다. 『농어촌을 수탈하는 층이 너무도 많아 그들은 움직일 수가 없어요.』
사연인즉 이달 말까지는 말목을 박고 발을 쳐야 하는데 말목으로 쓸 나무를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눈앞에 나무가 없는 것이 아니다. 산 주인이 간벌하려 해도 우선 벌목허가를 받기 어려워, 상인의 중개를 놓으면 결국 3배 이상의 비싼 값을 주고 되사서 쓰는 결과가 된다.
9일 현지에 들른 김문식 지도교수(서울대 농대)는 이 사실을 알고 학생대표와 주민을 데리고 군청에 가서 호소했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이치를 따져서 될 성질이 아님을 실감했다고 김 교수는 토로했다. 『보조금을 지급 받은 계원들은 42만원의 빚만 졌다고 불평들입니다.』
향토개척단은 또 그들 공동의 명의로 경기도와 인천 해운국에 진정서를 보냈다. 주민들의 소망이 하루에 한번만이라도 배가 꼭 다닐 수 있도록 할 수 없느냐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의 농산물과 어획물의 판로는 주로 인천.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만리포해수욕장으로 큰 배를 빼앗겨 지금은 조그만 통통배에 의존하고 있다. 짐은커녕 사람 타기에도 비좁아 아귀다툼이요 또 결항이 잦다. 그러나 「바캉스」손님이 끊어지길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학생들은 이 여름 주민들을 도와주는 일을 포기한 듯 마을 어린이들과 공부하고 뛰어 노는 것을 일과로 삼고 있다. <서산=권순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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