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DJ 5년 이제 역사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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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대중 정부가 오늘로 집권 5년을 마감한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로 그 5년은 성취와 좌절, 환호와 걱정, 빛과 그림자가 극명하게 엇갈린 시기였다.

IMF 위기 극복, 정보기술(IT)산업의 비약, 월드컵 성공, 남북교류 확대와 노벨상 수상은 DJ정부의 빛이었다. 반면 권력부패, 이념갈등과 편가르기, 한.미관계 악화, 소득불균형 심화, 특정지역 인사편중은 그림자였다.

여야 간 첫 정권교체라는 헌정사적 의미를 담은 DJ정부는 높은 국민적 기대 속에 출범했다. 국민들은 호남 출신 대통령의 등장으로 지역감정이 완화되기를 바랐다. 소수정권의 한계를 설득과 대화의 상생(相生)정치로 극복해줄 것으로도 믿었다.

그러나 거대 야당의 발목잡기 탓도 있었지만 DJ정권은 정국을 풀기 위한 방편으로 의원 빼가기, 친여(親與)시민단체 동원 등 변칙과 편법을 동원했다. 결국 여야관계가 극한 대치와 갈등을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정국을 관리하는 데 실패했다.

무엇보다 'DJ개혁'이 국민과 호흡을 맞추지 못하고 독선과 과욕으로 흐르면서 국정혼선과 민심이반을 낳았다. 교육.의료개혁의 실패가 좋은 예다.

집권 중반 이후 DJ정권은 국민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권력 내부의 알력이 겹치면서 '소수'중심의 통치에 의존했다. 그것은 '형님 아우'하는 권력 나눠먹기와 정치 검찰, DJ 아들들의 부패와 벤처 게이트의 원인이었다.

DJ정권 동안 남북관계는 화해 협력의 기반을 닦았다. 역사적인 6.15 정상회담에 이어 이산가족 상봉, 장관급회담, 비무장지대(DMZ) 관통 임시도로 개통, 금강산 관광 교류는 분단의 벽을 허무는 데 기여했다.

그렇지만 햇볕정책에 대한 턱없는 집착은 불법적인 뒷거래를 만들었고 국론분열과 안보 불감증이란 큰 부담을 남겼다. 비밀송금 사건은 퇴임 후에도 DJ를 괴롭힐 것이며, 북핵 위기의 해법 차이 탓에 한.미관계는 더욱 어려워졌다.

DJ 5년은 이제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그 평가는 역사가 해줄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DJ정부의 공과(功過)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