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위안부 기림비 프로젝트 잇단 악재로 휘청

미주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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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인들이 열정적으로 추진해온 위안부 기림비 프로젝트가 잇단 악재에 휘청대고 있다. 미국내 도시들의 위안부기림비 건립안이 무산되거나 무기연기되는 등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최근 캘리포니아 부에나비스타 시의회는 위안부기림비 건립안이 철회됐다. 또한 뉴욕시의 위안부기림비 건립과 위안부기림길(추모도로) 명명 프로젝트는 사실상 중단됐다. 뉴저지 포트리에선 시의회의 협조에도 불구하고 추진 단체간 불협화음으로 물거품의 위기에 처했다.

기림비 건립사업이 잇따라 좌초위기에 몰린 원인은 대략 세가지로 분석된다. 첫째는 일본정부의 집요한 방해공작이다. 일본은 지난 2010년 뉴저지 팰리세이즈팍에 미주최초의 위안부기림비가 건립되고 미동부에 3개, 서부에 2개가 세워지는 등 건립열기가 확산되자 본격적인 반대로비를 펼쳐 왔다.

지난해 5월 뉴욕의 일본총영사와 자민당의원들이 팰팍시를 방문, 기림비의 철거를 종용한 것을 시작으로 기림비 건립이 논의되는 지역에 현지 총영사와 일본커뮤니티가 나서 왜곡된 정보를 제공한 것이 주효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日정부 총력로비

대표적인 성공사례는 지난 4월 디트로이트 한인사회가 사우스필드 시립도서관 앞에 추진하던 위안부 소녀상 건립계획을 좌초시킨 일이다. 당시 일본총영사관과 기업인들은 도서관장을 만나 식사를 함께 하며 위안부역사에 관한 그들만의 논리를 펼쳐 건립안을 없던 일로 만들었다.

최근들어 두드러진 활약(?)을 하고 있는 것은 LA총영사관의 준 니이미 총영사이다. 그는 지난 7월 위안부소녀상을 건립한 글렌데일 시의원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낸 것은 물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일본은 과거 전쟁범죄에 대해 사과와 배상을 완전하게 이행했다”고 주장하는 허무맹랑한 기고문을 싣는 두둑한 뱃심을 보였다.

글렌데일 시의원들은 마지막 공청회에 일본계 주민들이 대거 몰려가 강력한 항의 소동을 벌여 진땀을 흘려야 했다. 니이미 총영사는 역시 기림비 건립안이 상정된 부에나파크 시의회 의원들에게도 서한을 보내며 과거 일본 총리 명의의 ‘위안부 피해자에게 보내는 사과 편지’ 번역본도 첨부하는 등 사실 호도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당초 부에나파크 시의회 분위기는 기림비건립안 통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됐으나 일본총영사의 편지가 도착한 이후 총 5명의 시의원중 반대(1명) 및 중립(2명) 의원들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최근엔 반대가 2명으로 늘어났다. 결국 공식 부결을 막기 위해 안건을 상정한 시의원이 스스로 거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 판벌리고 나몰라라

한인사회의 주도면밀하지 못한 준비자세도 기림비사업의 역행 요인이 되고 있다. 미동부 최대의 한인타운인 뉴욕 플러싱의 경우 지난해 2월 위안부기림비 건립과 함께 세계최초의 위안부추모길 지정계획이 발표됐지만 현재 사업추진은 전면 중단된 상태이다.

당시 김산옥 대뉴욕지구 상록회장이 기부한 5000달러를 종잣돈으로 추진위원회까지 발족됐지만 참여인사들이 한결같이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추진위 임시위원장을 맡았던 한창연 당시 뉴욕한인회장은 발족 당시 각 참여 단체의 현직 회장이 추진위를 맡기로 했지만 임기가 만료돼 후임인 민승기 현 회장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민승기 회장은 “기림비 건립 사업을 공식적으로 인수 받은 내용이 없다”면서 기림비 건립은 짧은 시간에 이룰 수 있는 사업이 아닌만큼 다른 단체나 개인이 맡아서 진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뜻을 표명하고 있다.

뉴욕시의 경우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달리 기림비 건립을 위해선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고 공원국에 최고 10만 달러의 관리 비용을 내야 하는 등 자금이 많이 필요하다는 점도 건립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와 함께 많은 한인들의 기대를 모았던 위안부 추모길 사업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추모길은 중국계 피터 쿠 시의원이 노던블러바드 156스트릿에서 루스벨트애브뉴로 들어가는 사잇길을 ‘컴포트 위민 메모리얼웨이(Comfort Women Memorial Way)’로 명명해 달라는 안을 시의회에 제출했으나 시의회에서 위안부추모길이 국제적인 이슈라는 지적을 받으며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한인단체 자중지란

한인사회 내부의 균열은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뉴저지 포트리에서 6개월째 공전되고 있는 위안부기림비 건립안은 추진단체간의 주도권 다툼으로 주먹다짐까지 일어나는 등 망신살만 뻗치고 있다. 뉴저지한인회 유강훈 회장과 일전퇴모 백영현 공동대표 등이 두차례에 걸쳐 중재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기림비 형태와 소녀상 형태를 놓고 대립하는 이들 단체간 감정의 골이 깊어져 백지화될 공산이 커졌다.

미국내 위안부기림비 건립운동은 과거역사에 대한 반성과 배상의 노력을 외면하고 있는 일본에 국제적인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에서 가장 효과적인 역사캠페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정부가 반대로비를 적극적으로 전개하는만큼 우리 정부도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한일간의 분쟁으로 비칠 수 있다’는 논리에 따라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백영현 일전퇴모 공동대표는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담근다는건 말이 안된다. 위안부문제를 비롯한 일본의 전쟁범죄의 가장 큰 피해자는 우리 한민족이다. 작게는 한일간의 문제일 수 있지만 두 번 다시 이같은 전쟁범죄가 일어나선 안된다는 세계인의 교훈을 위해 대한민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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