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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만리장성 이룬 「토끼의 방책」|호주에서 제9신|김찬삼 여행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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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서부지대에서 본 것 가운데서도 이색적인 것은 토끼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책이 아닐까한다. 백여년 전부터 토끼들이 목초를 가로채서 목축에 큰 피해를 주었기 때문에 양이 사는 목장에는 얼씬하지 못하도록 이른바 철의 장막을 치는 것이다. 이 대륙엔 토끼가 본디 없었는데 백 십여년 전 식용으로서 20여 마리의 종자토끼를 수입하여 「빅토리아」주에서 양식하던 중 화재로 나무울타리가 타버리자 들로 몰래 도망했으며 번식률이 강한 이 토끼들이 백여년 동안에 전국에 퍼져 무서운 세력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20세기초에 목초를 지키기 위해 남북으로 종힁하는 길이 1천 6백km이상이나 목책을 쳤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엔 사막으로 들어오므로 다시 제2, 제3의 철망방책을 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몽고의 남침을 막기 위해 만든 중국의 만리장성을 연상케 했다. 게다가 함정을 파서 밀어뜨리기도 하고 독살의 방법까지 썼기 때문에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어쩌면 양과 토끼의 백년전쟁이 벌어진 셈이다. 아니 장미전쟁이라고 하는 것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이 방책은 물론 도로에까지도 되어 있어서 차가 지나갈 양이면 이 방책의 문을 여닫게 되어 있다. 이것을 지나다니는 차들이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건조지대엔 「딩고」라는 야견이 있어서 처음에는 토끼를 잡아먹었으나 토끼들이 인공적으로 줄어들게 되자 이번엔 새끼 양을 잡아먹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남부지대의 목장에서는 1년에 2만여마리의 피해를 받았다는 것이다. 대륙횡단 때 양고기 구이를 만들어먹고 남은 것을 천막밖에 두었더니 「딩고」란 놈이 먹고 달아난 일이 있는데 사람들이 말리는 것을 뿌리치고 쫓아갔으나 따를 재간이 없었다.
한없이 펼쳐지는 광야에는 두 사람의 「카우·보이」가 두, 세마리의 개를 데리고 3천여 마리의 양들을 몰고 가고 있었다.
종교적인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며 성자라도 나올것만 같은 성스러운 목장풍경이다. 그런가하면 소의 떼들도 보였다. 『매매…』우는 양들의 여성적인 우아한「앨토」의 목소리도 좋지만 『음매…』하는 소들의 남성적인 「베이스」의 목소리는 일찌기 「샬리아핀」도 지니지 못했던 음색이다. 말하자면 목장은 남녀혼성의 「대 합창 교향악」을 이룬다. 이 대륙은 이 어진 짐숭들이 노래하는 낙원이다.
「셍상」의 『동물 사육제』란 아름다운 음색이 무색할 만큼 양과 소의 「사랑의 아리아」가 들린다.
이런 목가적인 정경 속을 달리던 「버스」는 하오에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주의 서울인 「퍼드」에 이르렀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도심지는 매우 조용했는데, 어찌나 거리가 말쑥한지 청초한 귀부인의 모습과도 같았다. 이 도시를 흐르는 「스원」강의 물은 수정처럼 맑고 하늘은 청자 빛을 띠고 상쾌한 바람이 불었다. 6월 중순이건만 남반구의 이곳은 지금 만추이기 때문이다.
「퍼드」시는 풍토병과 전염병이 없는 곳으로 이 대륙의 「오아시스」라고 할 수 있다. 주 가운데서 제일 큰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주의 전 인구 72만 중 39만이 이 「퍼드」시와 그 부근에 집중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자연의 조건이 얼마나 뛰어났는가를 알 수 있었다. 중심가는 영국풍인 고급주택들이 즐비하고 북쪽은 일반시민들의 주택가인데 특히 제2차대전후 동구 및 남구에서 「유토피아」를 찾아온 전재민들이 이른바 「슬럼」가를 이루고 있다. 이 나라엔 범죄가 매우 적다고는 하지만 이 도시는 여러나라에서 모인 사람들이 많이 사는 때문인지 인상이 어딘가 퇴폐적인 듯이 보였다. 성범죄들이 종종 벌어진다고 하는 말도 들었다.
어떤 유지의 소개로 가장 오랜 공장이라는 「스원」표 맥주공장을 찾았다. 맥주를 마시라고 주기에 몇 잔 거푸 들이켰더니 취기가 금방 돌았다. 우리나라 것보다 「알콜」분이 많았다. 이 나라 사람은 「위스키」는 위장을 해친다고 맥주를 매우 좋아하는데 우리나라 처럼 아무데서나 마시는 것은 아니며 마시는 곳이 지정되어 있다. 「퍼브」(pub)라고 하는데 이것은 「퍼블릭·바」(Public Bar)의 준말이다. 이런 대중 음료장은 시골도 흥청거린다. 맥주에는 신 것, 단것들의 종류가 있어서 자기 구매에 맞도록 고를 수가 있다. 이들은 독일사람 못지 않게 맥주를 즐기며 「파티」에 나갈 때에도 자기 생리에 맞는 맥주를 가지고 가는 일이 많다. 이들이 얼마나 개성적인 맥주광 인가를 알 수 있다. 맥주 판매에도 허가제가 되어 있으며 마시는 시간도 정해져 있다. 이 나라는 이렇게 고도의 문화를 지니면서도 엄격한 규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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