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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칼럼

혁명도 반혁명도 반민주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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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

최근 이집트의 군사쿠데타는 이 나라의 장래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것은 민주주의냐 독재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슬람 혁명에 의한 독재냐 군부의 반혁명에 의한 독재냐의 문제다. 이는 이집트뿐 아니라 중동의 거의 모든 국가에 두루 적용된다. 그리고 양측 모두 무장투쟁을 선택했기 때문에 결과는 내전으로 귀결하게 마련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은 군사적 승리를 거둘 수 없고 장군들도 정치적 승리를 거둘 수 없다. 따라서 독재, 심각한 폭력, 인권과 관련된 일련의 참사가 다시 일어나게 된다. 양측 모두 완전한 장악과 통제만을 원하며 어느 쪽도 경제와 사회를 근대화하는 방법에 대해 초보적인 지식이 없다. 어느 쪽이 우위를 차지하든 권위주의와 경기 침체가 다시 번지게 될 것이다.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의 구세대는 투옥과 지하운동에 익숙한 세대다. 하지만 이 단체의 신세대는 테러와 폭력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믿을 만한 이유가 많다. 이집트·시리아·예멘·튀니지, 그리고 이 지역의 다른 국가들도 머지않아 좀 더 군사적 지향이 강한 새로운 알카에다에 비옥한 토양이 되어줄 것이다. 알카에다는 이익과 이데올로기가 불협화음을 이루는 중동에서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될 터이다. 서방 세력, 그중에서도 미국은 영향력이나 실질적 수단이 거의 없다. 따라서 이들은 불평하고 위협하며 앞으로 닥쳐올 참사에 애도를 표하겠지만 종국에는 원칙이 아니라 이익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 예컨대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를 관장하는 데다 이스라엘과 차가운 평화를 유지하고 있어서 단순히 방치하기에는 전략적으로 너무나 중요한 나라다.

 이집트의 상황은 충분히 나쁘지만 이는 유일한 사례이기는커녕 질서가 사라진 것을 특징으로 하는 중동 지역 드라마의 일부다. 미국이 지탱하는 질서는 무너지고 있지만 새로운 질서는 떠오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중동을 넘어서까지 혼란이 퍼져나갈 위험이 있다. 미국은 이제 중동지역의 질서를 지키는 마지막 힘이라는 부담을 더 이상 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힘을 너무 쓴 데다 예산 삭감을 앞둔 상황에서 미국은 중동에서 철수하고 있다. 중동에서 위기가 지속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오늘날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과거엔 미국이 질서를 원하는 힘이었으나 이제는 지역 국가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또한 혼란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미국이 졌던 부담을 떠맡을 만큼 강력한 국가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열은 상호 모순되는 정책으로 귀결되는 수가 많다. 예컨대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집트에서 무슬림형제단에 맞서 군부를 지원하지만 시리아에선 군부에 대항해 살라피스트(이슬람 근본주의)를 후원한다. 그런데 살라피스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적인 시아파 이란과, 레바논 지역의 이란 대리인인 헤즈볼라의 지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지역의 권력투쟁과 분파주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반목은 과거에 생각하기 어려웠던 협력의 기회를 만들고 있기도 하다.

 이집트에서 군부의 반혁명은 상당기간 우세를 점할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 혁명은 결국 돌아올 것이다. 그 대의명분을 제거하지 못하는 이상에는 그렇다. 현재 이 분야에서는 나아진 것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이슬람 혁명이 실제로 되돌아오는 경우 더더욱 강력하고 폭력적인 것이 될 공산이 크다. 유럽의 역사에서도 이와 유사한 역학관계가 특히 19세기와 20세기의 혁명과 반혁명에서 분명하게 드러난 바 있다. 사실 유럽에서 이 같은 역학을 완전히 극복한 것은 불과 20년 전이다. 이제 그 현상은 대체로 바뀌지 않은 상태로 중동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Project Syndicate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