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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나무의 시대 … 언제까지 콘크리트로 지을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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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공학목재를 사용해 지은 런던 킹스데일 학교의 강당. 공법과 디자인 측면에서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 dRMM]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14~22일 열리는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을 기념해 미술관 앞에 임시 조형물 ‘끝없는 계단’을 설치한다. 총 187개의 나무 계단으로 만들어진다. 벤 에반스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총감독은 “야심적이고 현대적인 디자인 구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겠다”고 했다.

 나무 계단을 이리저리 연결해 쌓아놓은 듯한 작품과 현대 디자인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흔히 ‘나무=전통’이 떠오르지 않은가.

‘끝없는 계단’ 작업을 지휘한 이는 네덜란드 출신 건축가 알렉스 드 리케다. 현재 영국 RCA(Royal College of Art·영국왕립예술학교) 건축대학 학장을 맡고 있다. 95년부터 영국 런던에서 건축 스튜디오 디알엠엠(dRMM)을 이끌어왔다.

알렉스 드 리케 RCA 건축대학 학장.

 리케는 “나무, 즉 목재야말로 21세기 최고의 건축재료”라고 말했다. 그는 2012년 런던 올림픽 아파트(Olympic Village)을 설계하면서도 목재를 쓰자고 제안했을 정도다. 보험회사의 반대로 실현하지 못했지만 현재 다른 아파트 건축이 진행 중이다. 이스트 런던에 있는 dRMM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끝없는 계단’을 현대적이라고 했다.

 “재료나 구조에서 있어서 이만큼 혁신적인 게 없기 때문이다. 이 계단에는 총 11.4톤의 목재(튤립우드)가 사용되는데, 장소를 바꿔가며 재조립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나무가 미래 건축에 얼마나 중요한 재료인지 알리고 싶다.”

 -나무야말로 전통재료 아닌가.

 “건축사를 돌아보면, 모든 세기를 대표하는 특정 재료가 있었다. 19세기가 강철의 시대였다면 20세기는 콘크리트의 시대였다. 이런 재료가 각광받기까지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훌륭한 엔지니어들의 도움이 컸다. 그렇다면 21세기는? 내 대답은 ‘나무’다. 첨단기술로 만든 친환경 재료인 공학목재(engineered timber)가 미래 건축의 핵심이 될 것이다.”

14일부터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 앞에 전시될 나무 작품 ‘끝없는 계단’의 이미지.

 인터뷰 도중 리케 학장은 “당신은 콘크리트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지난 세기에 콘크리트가 그렇게 많이 쓰였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콘크리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무는 다르다. 향기롭고, 디자인 면에서 표현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인간과 교감할 수 있고, 가장 건강하고 멋진 재료”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공학 목재는 원목 목재와 다르다. 얇게 자른 나무를 접착한 것(집성목)으로 콘크리트보다 단단하고, 화재에도 강해 앞으로 쓰임새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그만큼 나무를 많이 소비해야 한다.

 “공학목재에는 빨리 자라는 나무들을 쓴다. 아름답고 오래된 나무를 자를 필요가 없다. 강철이나 콘크리트를 만들어낼 때보다 탄소 배출량도 절반 수준이다.”

 dRMM이 영국에서 처음으로 100% 공학목재로만 지은 킹스데일 학교(Kingsdale School·2007)는 첨단 공법과 창의적 디자인이 만난 작품으로 꼽힌다. 따뜻하고 발랄한 공간을 만들어내 ‘학교는 딱딱하고 지루한 곳’이라는 고정관념을 깼다. 학교 건축의 새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학교 설계는 리케 원장이 나무라는 재료 못잖게 열정을 쏟아 붓고 있는 분야다. 지난해 지어진 세인트 알반스 아카데미는 아름답고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영국왕립건축가협회(RIIBA) 상을 수상했다. dRMM은 영국에서만 10개 이상의 학교 설계에 참여해왔다.

 -학교에 집중하는 각별한 이유가 있나.

 “학교 설계는 도전적이며,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학교 디자인은 하나의 ‘작은 사회’를 디자인하는 것과 같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사회가 어떤 곳인지를 느끼고 체험한다. 교실과 운동장, 정문, 체육관 등 공간도 다양해 설계의 모든 요소가 들어간다. 노력에 비해 ‘돈’은 안 되지만 보람은 크다.”

 그는 현재 건축 교육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건축학도가 해마다 양산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 같이 일하려면 최소 5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은 멋지게 보이는 건물에 관심이 많은데, 그리는(drawing) 건축과 짓는(making) 건축의 간극이 크다”며 “내가 할 일은 그 간극을 줄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건축은 말하는 것도, 그리는 것도 아니고 ‘짓는’ 것이죠. 그러려면 재료부터 꿰뚫어야 해요. 재료를 모르면 디자인도, 혁신도 없습니다”.

◆ 알렉스 드 리케=네덜란드 태생. 영국왕립예술학교(RCA)졸업. 1995년부터 dRMM을 운영하며 영국 건축학교 AA스쿨에서도 강의했다.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 대표 건축가로 선정됐다. 영국왕립예술학교(RCA)=1837년 설립된 영국의 대표적인 예술·디자인 전문대학원 학교. 세계적인 스타 디자이너를 많이 배출해 ‘디자이너 사관학교’라 불린다. RCA는 지난해 건축 교육 강화를 선언하고 공법과 디자인에서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리케를 새 학장으로 영입했다.

런던=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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