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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내주자 … 공책엔 단답형, SNS엔 문장 줄줄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태블릿PC를 활용한 교육기업인 청담러닝의 ‘청담 3.0’ 수업의 한 장면. 교사의 태블릿PC는 TV를 통해 칠판처럼 학생들에게 공유되고 학생들의 학습 결과물은 교사의 태블릿PC로 실시간 전달된다.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운다. [사진 청담러닝]

1980년대 말 이후 태어난 세대는 이른바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라 불린다.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기기를 자연스럽게 접했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T) 기기를 통해 확장된 시공간에 무척 익숙한 세대다. 새로운 세대를 위한 진화한 교육 패러다임으로 등장한 것이 스마트 교육이다. 올해 144개 학교가 연구학교로 선정돼 스마트 교육을 시행 중이다. 전체 43만 명의 교원 중 16만 명이 관련 연수를 받았다. 내년엔 초·중·고 450개 학교에서 사회·과학 과목에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될 예정이다. 스마트 교육은 21세기 ‘디지털 학생’을 위한 교육의 화두로 떠올랐다.

 스마트 교육이 대세이며,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사실엔 큰 이견이 없지만 논란은 여전하고 학부모들의 우려도 적지 않다. 우려하는 점은 크게 두 가지, 역기능에 대한 걱정과 교육 효과에 대한 의구심이다. 학습은커녕 중독에 빠지거나 유해환경에 노출되는 건 아닌지, 과연 능력을 계발하고 잠재성을 끌어낼 수 있을지 전문가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봤다.

청담러닝의 스마트 클래스.

중독과 몰입 … 동전의 양면
국내 스마트폰 보급률은 70%에 이른다. 세계 1위다. 게임과 채팅, 스마트폰 중독 등 ‘스마트 사회’의 부작용도 상당하다. 스마트 교육에 대한 우려도 여기서 시작된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스마트교육 R&D본부 김진숙 본부장은 “정면돌파 방식으로 역기능에 대비하고 순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사용을 막을 단계는 이미 넘었기 때문에 ‘스마트폰 꺼’라고 말해봤자 통하지도 않고 몰래 사용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스마트폰 활용을 단순히 게임·채팅만 하는 것으로 치부하고 금지하는 건 어른들만의 입장일 뿐”이라며 “적극적으로 활용해 소통과 교육의 도구로 만들어 긍정 효과를 유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현실은 교육할 생각은 하지 않고 나쁜 것으로 매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곽금주(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이다. 무조건 안 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 부모가 함께 하라”고 조언했다.

 곽 교수의 얘기다.
 “함께 규칙을 정해 스스로 자제하도록 교육하고 행동 습관을 만들어 주는 것이 현명하다. 중독성은 있지만 그렇다고 안 쓸 수는 없다. 교육을 통해 부정적인 면을 줄이는 방향을 택해야 한다. 지금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땐, 또 어떤 새로운 것이 나올지 모른다. 새로운 흐름을 막기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함께 즐기면서 또 다른 새로운 것이 등장했을 때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계성초등학교의 조기성 교사는 오히려 스마트 기기 활용을 통해 집중도와 몰입도가 향상했다고 말했다. 2011년 4학년 한 학급을 선정해 ‘1인 1디바이스’ 스마트교실을 만든 계성초등학교는 현재 4·5·6학년 12개 학급에서 태블릿PC, 전자칠판 등으로 수업하고 있다. 조 교사는 “처음엔 수업 중에도 게임하고 싶어 하고 다른 행동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사가 학생들의 디바이스를 모니터링하는 솔루션이 있기 때문에 통제가 가능했다. 수업에 익숙해지면서 학생 스스로가 ‘딴짓’보다 수업 자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 교사는 “특히 과잉행동 학생, 장난꾸러기 남학생들의 수업 참여도와 집중도가 향상됐다”고 했다.

 스마트 교육이 스마트 기기 중독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아니라 학습에 놀이를 결합해 학생들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교육의 도구로 바뀐 셈이다.
 
문제해결 능력, 창의력, 협업 능력까지
한 초등학교의 과학 시간. 자석 실험을 마친 뒤 교사는 학생들에게 오늘 배우고 느낀 점에 대해 적어보라고 학생들에게 주문했다.

 “자석으로 실험을 했다. 자석의 원리가 참 신기하다.”

 26명의 학생이 적어낸 글 대부분은 이처럼 단답식의 일률적인 내용이었다. 교사는 다시 주문했다. “문자로 써서 SNS에 올려보자”고. 학생들은 빠른 손놀림으로 문자를 ‘다다다다다’ 치더니 훨씬 길고 자세한 문장으로 글을 올리고 내용을 공유했다. 수단을 바꾸니 수업 참여도는 물론 표현력까지 눈에 띄게 향상하는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 사례에서 스마트 기기는 표현의 수단이다. 교사가 같은 주문을 했는데도 아이들 반응은 달랐다. 더 편하고 익숙한 방식일 때 자신이 가진 지식과 생각을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조기성 교사도 “스마트 기기가 수업에서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발전된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교육을 구현하고 학생들이 21세기에 필요한 역량을 키우도록 하는 게 스마트 교육의 본질”이라는 얘기다.

 곽금주 교수는 방식의 차이가 다른 결과를 유도하는 또 다른 사례를 제시했다. 소극적이고 수줍음 많은 학생의 경우 스마트 수업이 적극성을 끌어낼 수 있다는 실험 결과다. “주목받는 게 싫어서 늘 조용하던 학생들이 기기를 사용해 교사에게 1대 1로 직접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토론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스마트 교육을 시행 중인 초·중·고 14개 학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학생의 태도, 수용성, 창의성 개발, 상호 협력 및 의사소통 등 다양한 역량이 스마트 교육 도입 후 향상됐다. 학부모들 역시 자기주도적 학습, 집중력 강화, 자기표현력, 사고력 신장에서 자녀들이 긍정적 효과를 얻었다고 답했다.

 김진숙 본부장은 “어떤 문제가 주어져도 스스로 해결을 모색하는 역량, 수많은 정보를 탐색하고 의미를 해석해 분석하는 사고력, 그것을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 창의력, 정보를 교류하면서 남의 생각을 이해하는 인성까지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주목되는 한 가지는 소통·협업 능력의 강화다. 스마트 사회가 소통의 단절을 불러온다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반대되는 결과다. 조기성 교사는 “SNS를 활용해 선생님과 고민상담을 하고 친구들과 일상생활을 공유하면서 학생들의 협동심이 늘었다”며 “경쟁보다는 상생을 지향하는 것이 스마트 교육이다”라고 말했다.

교사들도 쌍방향 소통 교육 체감
변화는 학생들에게만 일어나지 않는다. 교사들 역시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새로운 교사의 역할을 인식하게 됐다고 말한다. 조 교사는 “생각하지 못했던 창의적인 방법으로 학습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아이들은 가르쳐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바른 길로 안내해 줘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교사가 주제를 정해주면 학생 스스로 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스마트 교육 현장에선 교사와 학생의 관계도 바뀔 수밖에 없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던 일방향 교육은 교사·학생이 동등하게 학습에 참여하는 쌍방의 소통 교육으로 재정립된 것이다.

 스마트교육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천세영(충남대 교육학과) 교수는 “스마트 기기를 안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스마트 교육은 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각성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책으로 공부하든, 스마트 기기를 활용하든 교육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다만 기존의 교육이 글 잘 읽고 셈 잘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앞으로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새로운 인재를 길러내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다면 교육도 글자·숫자 중심에서 변해야 한다. 멀티미디어가 제공하는 다양한 방식을 활용하는 방향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온라인 중앙일보·중앙선데이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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