큼직한 새우 다진 마늘을 만나 밥도둑이 됐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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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진 마늘 튀김 새우. 광둥요리의 대표적인 메뉴 중 하나다. 튀겨진 마늘의 냄새와 바삭거리는 식감이 예술이다.

한때 홍콩이 우리나라에서 대단한 대접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우리가 개발이 덜 되었을 때의 일이다. 홍콩은 꿈의 도시, 선망의 도시였다. ‘별들이 소곤대는 밤거리’가 있는 곳이고, ‘홍콩에서 배만 들어오면’ 인생 역전한다는 농담이 유행어로 번지기도 했다. 홍콩 영화의 인기는 또 얼마나 대단했던가? 학교 앞 문방구에는 왕쭈셴(王祖賢)·저우룬파 (周潤發)·장궈룽(張國榮) 책받침으로 도배가 되었었다. 그때 홍콩이 어찌나 좋은 곳으로 여겨졌던지 멋진 곳에 가거나 기분이 좋은 것을 빗대어 ‘홍콩 간다’고 했던 말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을 정도다.

처음 홍콩에 가게 되었을 때는 나도 왠지 막연한 기대감에 설렜었다. 그러다가 뒷골목에서 주윤발이 성냥개비 폼 나게 물고 바바리 자락 휘날리며 걸어 나오는 대신 웃통을 벗어젖히고 머리가 떡 진 아저씨들이 활개치는 모습에 환상이 바로 깨졌다.

그런 나를 달래준 것이 바로 홍콩의 음식이었다. 처음 경험하는 새로운 맛, 입맛에 딱 맞는 맛있는 요리들 덕분에 홍콩의 진가를 비로소 체험하게 되었다.

중국의 음식은 크게 나눠 네 가지로 구분된다. 베이징(北京)을 중심으로 한 산둥(山東)요리, 쓰촨(四川)요리, 상하이(上海)요리, 그리고 홍콩이 속해 있는 광둥(廣東)요리다. 광둥 지역은 몇 백 년 전부터 외국과의 교류가 빈번해 전통적인 맛과 국제적인 맛이 결합된 요리들이 만들어졌다. 그래서인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중국요리가 되었다. 해산물을 많이 사용하는 것도 특징인데, 재료의 맛을 잘 살리기 위해 비교적 간을 싱겁게 하고 기름도 적게 쓴다. 그래서 맛이 담백한 편이고 우리 입맛에 아주 잘 맞는다.

서울에서 제대로 된 정통 광둥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은 신사동에 있는 ‘채운’이라는 곳이다. 증권회사 애널리스트 출신인 김남수(47) 대표가 2005년 홍콩에서 요리사들을 초빙해 개업했다. 시장 분석가답게 산둥요리 일색인 우리나라 중국음식 시장에서 비어 있는 곳을 잘 찾아냈다.

성공한 모든 식당의 첫째 공통점은 좋은 재료다. ‘채운’도 같은 공식을 따르고 있었다. 구운 통닭이나 생선찜 같은 경우 생물로 그날 아침에 손질한 것으로만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주문이 들어와도 재료가 다 떨어져 못 팔게 되는 경우도 많다. 더 신선한 재료가 필요한 몇몇 메뉴들은 아예 당일 주문을 받지 않고 반드시 이틀 전 예약을 통해서만 주문을 받기도 한다. 처음엔 손님들이 낯설어하고 불만도 많았지만 이제는 좋은 재료에 대한 고집을 이해하고 적응해서 흔쾌히 사전 주문을 하는 단골들이 많아졌다.

2, 3 채운. 채운이라는 상호는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지은 한시에서 따왔다. ‘아롱진 구름’이라는 뜻이지만 배를 ‘채운’다는 재미있는 뉘앙스도 함께 담았다.

‘채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다진 마늘 튀김 새우’다. 신선한 통마늘을 갈아 생강·파·고추 등과 같이 섞은 다음 큼지막한 대하와 함께 기름에 튀긴 광둥요리의 대표 메뉴 중 하나다. 입맛을 끌어당기는 고소한 냄새가 나는 마늘 튀김이 바삭거리면서 감칠맛 있게 새우를 감싸 안아 맛을 상승시켜주는 것이 아주 일품이다. 이 마늘 튀김은 따로 밥에 비벼 먹어도 아주 맛있다. 적당히 잘 튀겨서인지 기름기는 별로 느껴지지 않고 그저 밥도둑처럼 자꾸 숟가락을 부른다.

이곳에는 다른 곳에선 찾기 힘든 아주 특별한 메뉴가 있다. ‘시엔위 튀김’이라는 것이다. ‘마요위’라는 조기 종류의 생선을 소금에 절여 삭힌 것을 프라이 팬에 기름을 두르고 튀겨낸 것이다. 튀겼어도 삭힌 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막상 입안에 들어가면 그 풍부한 맛에 깜짝 놀란다. 반할 수밖에 없는 중독성 있는 매력이 있다. 홍어애탕이나 청국장과 같은 경우다. 맛을 보고 나서는 반해 이 집을 갈 때마다 찾는 메뉴가 됐다.

김 대표가 처음 ‘채운’을 개업했을 때는 고전을 많이 했다고 한다. 중국집인데 짜장면·짬뽕도 없고 깐풍기나 라조육 같은 익숙한 요리들도 없으니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는 손님들도 많았다. 좋은 재료를 쓰고 홍콩 요리사들을 쓰니 가격도 비싸졌다.

그래도 좋은 요리는 통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계속 밀고나갔는데 다행히 이제는 인정받는 식당이 되었다. 시장을 제대로 읽어낸 소신의 성공이다. 덕분에 우리는 홍콩에 가지 않고도 이렇게 맛있는 광둥요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왕쭈셴을 마주칠 확률이 아예 없는 것은 좀 아쉽지만. (참, 손님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몇 년 전부터 짜장면을 시작했단다.)

**채운: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25-10 전화: 02-516-8837. 휴일이 없이 일요일에도 한다. 단골들이 많고 좌석이 많지 않아 반드시 예약하는 것이 좋다. ‘다진 마늘 튀김 새우’ 6만원, ‘가지와 다진 돼지고기 냄비’ 2만7000원.



음식, 사진, 여행을 진지하게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마케팅·리서치 전문가. 경영학 박사 @yeongsview

온라인 중앙일보·글 주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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