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1)「독서 운동」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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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나라처럼 『××운동』이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절미운동, 잘살기운동, 내집앞쓸기운동, 걸어다니기운동 등 현깃증이 날 정도로 소란을 피우더니 구호로만 외치는 운동 탓이었든지 근래에 와서는 잠잠해진 것 같다. 그러다가 요즈음에 와서 별안간 각계에서 「독서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나 책 안읽는 민족을 한탄만 하던 여름철 출판계를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10년전 농어촌에서부터 시작된 마을 문고 운동은 이제 1만5천개의 문고로 확장되었고, 국민 독서 연맹에서는 직장문고, 군인문고 설치 운동을 벌이며, 이번에는 대통령기 쟁탈 제1회 국민 독서 경진 대회까지 준비, 실시 중에 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이와 때를 같이하여 문교부에서는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한 달에 3권씩의 양서를 읽고 독후감을 제출토록 방침을 세웠다한다. 한꺼번에 독서 풍년이든 느낌이나 어딘가 서글픔이 앞선다. 어떠한 사회 운동이란 것은 그 사회상을 역설적으로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인구 몇천명에 1개 공공도서관이 있는데 비해 50만명에 겨우 1개 도서관 꼴인 우리나라 국민은 읽기 싫어서가 아니라 쉽게 책을 접할 수 있는 독서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층의 장서용 전집 출판물로만 명맥을 유지하는 출판 풍토에 일반 대중은 자기 소득에 안 맞는 값싼 읽을 거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이번 문교 당국의 방침에는 도서실이 없는 학교에는 학급 문고라도 만들어 최소한 도서실을 마련해 줄 것이라 하니, 무시험 진학으로 매우 고조된 독서 습관을 채워줄 수 있는 구체성 있는 방안이라 생각된다.
사회마다, 직장마다, 학교마다, 가정마다에 알뜰한 도서 시설이 마련되어 독서가 생활화 되는 날 독서 운동은 스스로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엄대섭 <마을 문고 사무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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