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 물린 소 과학자|유전학자 메드베데프 등 탄압의 내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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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5월말 소련의 생물학자 「조레스·알렉사드로비치·메드베데프」가 30여년 동안 소련 생물 학계에 군림해 온 「뤼셍코」의 이론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수용됐다. 소련 정부의 이러한 조치에 대해 「알렉산더·솔제니친」을 비롯한 지식인들이 정부에 항의, 「메드베데프」가 다시 풀려 나오는 촌극을 벌였다.
올해 45세의 「조레스·알렉산드로비치·메드베데프」는 「모스크바」에서 1백여㎞ 남쪽에 위치한 「오브닌스크」 방사선 의학 연구소의 실험실 주임으로 있었다.
그는 『「뤼셍코」 이론의 비판』이라는 논문을 작성, 학자들 사이에 정부 기관 몰래 회람시켰다. 이 논문이 미국을 비롯한 서구 제국에서 번역 출판되자 소련 정부는 69년에 「메드베데프」를 연구소의 간부직에서 쫓아냈다.
이러한 수난에 이어 지난 5월에는 경찰관 4명과 의사 2명이 「오브닌스크」의 자택에서 「메드베데프」를 체포, 정신병자라는 이유로 병원에 잡아넣었다. 그가 체포된 데에는 성급한 서방 측 신문의 반응에 소련 정부가 자극된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이 있다.
30여년이 넘도록 소련 생물 학계를 지배해온 어용적인 유전 학설을 반증한 그의 이론에 대해 「뉴요크·타임스」는 『이단자의 반항』이라고 표현하는 등 서방측의 관계자들이 매우 흥분했던 것이다. 유전학에 있어서 소련은 오랜 전부터 자기네가 세계 생물 학계에서는 으뜸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유전 인자, 특히 인간의 유전 인자까지도 뜻대로 개량하여 빠른 시일 안에 계급 없는 사회주의의 유형에 맞는 새로운 인간을 창조해 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 왔다.
그러나 30년대에 밀어닥친 식량 기근으로 소련의 혁명 작업이 주춤, 온 국력을 농업 개발에 쏟았다. 이런 북새통에 결국 유전학자들의 노력은 열매를 맺지 못했다. 이 혼란기에 식물배양을 연구하던 「우크라이나」 출신의 「뤼셍코」가 자연도 변증법적 유물론의 기념에 맞도록 변형할 수 있다는 이론을 들고나섰다. 사실 「뤼셍코」의 이론은 1백여년 전 「찰스·다윈」이 범한 것과 똑같은 오류에 빠져 있었다. 즉 생존 중에 얻어진 지질은 다음 세대에 유전된다는 이론이었다. 이 그릇된 가설을 토대로 「뤼셍코」는 환경을 적당히 변화시켜 새로운 형태의 동식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예언했다.
그라 1935년 「콜호스」 (집단 농장)의 농민 대회에서 자기의 학설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모조리 『계급 투쟁의 적』이라고 규탄하자 배석했던 「스탈린」은 『「뤼셍코」 동무, 브라보!』라고 외치며 그를 찬양했다. 이 때문에 소련 생물 학계는 세계 학계에서 고립되어 1937년 「모스크바」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던 제7차 세계 유전학 회의를 미루기까지 했다.
「뤼셍코」는 유전 학설을 공산주의 이론에 맞도록 이론을 전개, 「도그머」화하여 「스탈린」상을 세번,「레닌」훈장을 여덟개나 받으며 『사회주의 노동자의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1961년 유전 학자인 「메드베데프」가 「뤼셍코」의 오류를 지적하기 시작하자 「뤼셍코」는 이를 「스탈린」과 「흐루시초프」에 대한 도전이라고 윽박질렀다. 그러나 1964년 「흐루시초프」의 실각과 함께 현대 유전학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 지면서 「뤼셍코」는 영웅 칭호를 박탈당하고 공직에서 추방됐다.
그러나 「메드베데프」의 호된 비판은 결과적으로 「소비에트」 체제의 학문에 대한 폭거를 세세히 파헤친 효과로 나타나 소련 정부는 그를 체포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체포되자 「솔제니친」 외에 저명한 핵 물리학자 「안드레이·사하로프」를 비롯한 소련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들이 항의하자 소련 정부는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단서를 붙여 이 과학자를 풀어주었다.
「솔제니친」은 항의 성명에서 『이 체포 행위야말로 「나치스」의 「개스」실보다 더 가혹한 짓이다. 이는 정신적인 학살 행위이다.』라고 말했다. <독 슈피겔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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