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카메라의 눈, 신의 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이 사진(228.2×367.2㎝)이 갖는 스케일을 지면에 전하는 건 무리일 거다. 게재된 이미지는 전체 사진의 오른쪽 아래 4분의 1가량이다. 나머지 장면 또한 금색 구가 무한히 펼쳐진 듯한 광경이니, 여러분들의 상상으로 화면을 네 배 확장해 보시길 부탁드린다. 독일 사진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58)의 ‘가미오칸데’(2007)다. 일본 기후(岐阜)현 가미오카(神岡) 광산의 1000m 지하에 있는 뉴트리노(중성미자) 검출장치다. 동그란 금색 구는 빛 탐지기, 배를 띄우고 있는 것은 수천, 수만t의 순수한 물이다. 이 대형 원기둥 수조들을 설치하면서 폐광은 입자 물리학의 산실로 부활했다. 이곳의 여러 실험 성과 덕분에 일본은 노벨 물리학상에 다가갈 수 있었다.

 사진가의 관심을 끈 것은 첨단 과학 연구단지의 거대 건축물이다. 그러나 사진이 연상시키는 것은 묘하게도 ‘단테의 조각배’다. 들라크루아가 24세 때 그린 이 장중한 그림엔 지옥의 강을 건너는 단테의 배, 뱃전을 붙잡으며 구원을 갈구하는 망자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가미오카 광산의 물 위에 떠 있는 저 배 위 사람들이 그림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저들은 과연 우주 탄생의 비밀을 밝힐 수 있을까.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가미오칸데(부분), 2007, C-프린트, 228.2×367.2㎝.

 구르스키는 생존 사진가 중 경매에서 작품이 가장 고가에 팔리는 이 중 한 명이다. 북한 아리랑 공연을 담은 ‘평양’ 시리즈로도 알려져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무의미한 부속품일 뿐인 독재국가가 만드는 스펙터클을 냉정하게 보여주는 사진이다. 원거리에서 전경을 조망한 사진을 여러 컷 찍은 뒤 한데 합쳐 마치 신이 지상을 내려다보듯 디테일을 살린 것이 그의 장기다. 대형 프린트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도쿄 국립신미술관에서 열리는 구르스키전은 이 같은 그의 대표작들을 망라하고 있다.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방콕의 강 위에 반사되는 영롱한 햇빛, 프라다 매장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열된 구두들, 베트남 나트랑의 소쿠리 공장 사람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도쿄·시카고 증권 거래소의 군상 등.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신이 이 세상을 잠시 둘러본다면 이런 기분일까, 거기 그를 위한 자리는 있을까, 이 세상에 희망은 있을까 싶다.

 특히 미술관이 대표 이미지로 내세우고 있는 ‘가미오칸데’는 원전 오염수를 바다로 내보내고 있는 무력한 부자 나라 일본의 현재와 맞물리며 사뭇 음울한 분위기를 풍긴다. 찬란한 과학적 성취도, 원전 사태라는 스스로 불러낸 괴물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건가.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