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감축 기지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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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주한 미군의 감축설이 나돈 연초부터 불경기의 그늘이 스미기 시작했던 기지촌 주변은 철수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면서 눈에 띄게 불경기의 바람이 불어 닥쳤다. 평택·의정부·동두천·문산 등 미군 주둔부대를 상대로 경기를 이어오던 기지촌 주변은 철수설과 함께 미군의 출입이 뜸해지면서 부동산 가격이 민감하게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한인 종업원의 감원 선풍, 각종 유흥업소의 몰락 등으로 불경기의 여파가 널리 번지고 있다. 현지 주민들은『만일 미군이 모두 철수한다면 우리도 생활 근거지를 찾아 이동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하면서, 이에 앞서 당국의 대책을 바라고 있었다.
경기도 평택군 송탄읍 신장리 김모씨(48)는 작년 10월에 1백 50만원을 호가하던 집을 요즈음 팔려고 내놨으나 l백 20만원에도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다고 울상이었다. 10일 현지 군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평택군 팽성면 ××기지와 평택군 송탄읍 00공군 기지촌의 땅값은 평당 2만 7천원까지 올랐다가 최근에 10∼50% 까지 폭락했다는 것.
이 같은 부동산의 폭락은 작년 9월 이 지역 미군부대의 예산 삭감에 따른 한인 종업원 3백여 명의 무더기 감원에 따른 불경기 탓이라고 현지 주민들은 풀이하고 있다. 요즈음 이 지역 복덕방 2백 10여개소엔 한때 번창했던 때와는 달리 땅을 팔려고 내놓은 사람들이 1천 여명이나 몰려오고 있으나 불과 5%도 흥정을 끝맺지 못하고 있다고.
평택·오산 기지촌 주변에 산재한 미군 상대의 R 「홀」등 22개 유흥업소도 불경기로 폐문직전. 송탄읍 신장리 A「홀」의 경우 작년 12월까지만 해도 1일 맥주 30여 짝을 파는 등 제법 경기가 좋았으나 올해 들어 1일 평균 2∼3 「박스」를 팔기가 힘든 실정으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유흥업자들은 『이 같은 불경기가 최근 미군들의 외출이 급격히 줄어든 데 있다』 고 털어놓고 『태반의 업주들이 관광 진흥법에 따른 월 5백「달러」를 예입해야 하는 법정 「달러」도 벌지 못해 허가취소를 받을 판』이라며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이 불경기의 여파는 미군을 상대로 하루벌이 해온 수많은 위안부들에게도 밀려왔다. 이 지역의 위안부들은 모두 5천여명(직업부녀회 조사). 이들은 작년 9월까지만 해도 월 평균 수입액이 10만원을 넘었으나 최근엔 월 평균 7천∼5만원 선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 빚이 없는 위안부들은 일찌감치 기지촌을 떠나 서울 등 도시로 가는 사람도 많았다. 이 바람은 3천여 각급 상가에도 불어닥쳐 작년까지만 해도 월 평균 40여 만원의 매상고를 올리던 것이 요즘엔 딴판이 됐다.
송탄읍 신장리 K씨(48)의 상점은 『몇햇동안 월 평균 30여 만원이었으나 요즈음엔 3만원도 안돼 세금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놓고 있다.
동두천의 경우도 마찬가지. 경기도 동두천의 외기노조 산하 50여 명의 종업원들이 7월말까지 감원대상에 올랐다는 소문이 나돌고 이밖에도 다수의 노조원들이 올해 안에 밀려난다는 예상으로 동두천엔 요즘 전직운동이 한창이다.
이 같은 일부 종업원들의 움직임은 4천여 외기노조 산하 종업원들의 불안을 자아내고 있다.
동두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반응은 미군 상대 위안부들. 이 지역 3천여 명의 위안부들은 태반이 포주들에게 1인당 5만∼20만원까지의 빚을 걸머지고 있다.
이들에게 며칠 전부터 「미군 감축 확정」이란 소문이 나돌아 「이젠 끝장났다』며 포주들에게 이른바 몸값을 갚기에 안간힘. 불경기 속에「빚 갚기」마저 만만치 앉자 많은 위안부들이 미군들과 국제결혼을 함으로써 돌파구를 찾는 현상도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미군 감축의 여파는 미군 상대 전당포의 폐문에도 나타났다.
외출하는 미군을 상대로 물건을 잡고 월 1할 5푼의 이자를 받고 이때까지 적잖게 재미를 보아온 수십개의 전당포는 이제 「영업중지」 팻말을 붙이고 있고 가게에 「방매가」란 표가 붙은 곳도 있다. 이들의 거래선인 미군이 언제 본국으로 돌아갈지 모르는데 어떻게 물건을 잡고 돈을 줄 수 있느냐는 단순한 이유
그 동안 비공식으로 집계된 것을 보면 미군들이 동두천지역에 매달 뿌린 돈이 1억 5천여 만원- 그러나 이 기대가 사라진 듯 이곳 미군 상대 관광「홀」은 재빨리 막걸리 「홀」로 간판을 바꾸고 있기도 하다.

<평택= 조원환·동두천="김호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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