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일에서 간행된 『20세기 음악』56인 속에|뜨거운 찬사에 묻힌 윤이상 음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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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72년 독일 「뮌헨·올림픽」개회 오페라 작곡을 위촉받은 한국 작곡가 윤이상씨의 음악에 관한 논문이 최근 독일서 간행된 『20세기 음악』수록되어 서구 악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평론가 「요셉·호이슬러」씨가 쓴 이 책은 20세기 초반부터 오늘에 이르는 세계적 작곡가 56명을 선정. 악보와 함께 그의 음악적 특성을 상세히 분석하고 있다. <편집자>
윤이상씨의 음악은 비교적 쉽게 풀이되고 있다. 여러개의 긴 음향이 울리는 가운데 타악기의 부드러운 소음이 배합되는가 하면 「하프」가 이에 한몫 끼는 등 각 파트의 악상이 엇갈리면서 모두를 장식하다가 비로소 여러개의 긴 음향으로 퍼지기 시작한다.
이때 한쪽에서는 리듬이 변화 있게 생동하여 어울림으로써 전체적으로 하나의 커다란 음형 상을 형성한다. 장식적인 선들이 복잡한 리듬으로 전개된다든가 혹은 타악기가 독립적으로 때리는 소음에서 마치 마법사가 주문을 외는 제식 광경을 연상케 한다. 이때 명상적인 음향이 뛰쳐나와 이에 합세한다. 섬세한 색감과 소음으로 구성된 씨의 음악은 인상주의적 취향을 엿보이게 한다고 할까. 윤씨의 음악적 특성은 이런 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음악 어법에 생소한 서구인들은 새로운 신비 속에 싸인다.
본래 윤씨의 음악적 의도는 동양 음악의 전통과 서양의 음향 소재를 어떻게 융합시키느냐에 있었다. 그는 이러한 뜻을 실천하는데 긴 시간을 낭비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에서 습득한 그의 음악 지식은 무조주의적인 영역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던 중 「조셉·루퍼」의 저서 『12음에 의한 작곡 기법』이 그로 하여금 새로운 문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 새로운 전망은 서양의 현대 어법의 숙달 없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유럽으로 이주해야만 했던 것이다. 따라서 제2의 수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는 파리나 베를린 등지에서 자신의 신조를 꿋꿋이 지켜나갔을 뿐 단순한 전위 작곡가로 탈바꿈하지 않았다. 요컨대 그는 각국의 전통적인 음악과 사고를 현대 기법에 융해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우리는 그의 음악이 현대적 경향이 짙은 것일수록 음악적 근원이 한국 예술의 전통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특히 그의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이나 『교향적 정경』에서 이와 같은 현상은 두드러 진다.
윤씨는 환상적인 그의 교향곡에서 청중을 「디오니소스」적인 황홀함과 열광 속에 몰아넣었다. 그러나 그의 스코어는 지나치게 질서 정연하여 실제의 음향과는 대조를 이룬다. 동양은 이미 낱개 음이 갖고 있는 생동력을 중요시하였고 구절법의 기술도 발전해 있었다.
그는 이와 같이 동양 특유의 요소를 그의 음악에 적용함으로써 새 경지를 개척했다. 이와 같이 그는 한국의 전통을 세계적인 것으로 지양시킴과 동시에 「P·불레」·「J·케이지」·「M·펠드만」, 최근에는 「슈토크하우젠」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하여 20세기 최대의 음악가들과 자리를 함께 하고 있으며 이어 그의 눈부신 업적은 세계의 저명한 음악 평론가들로부터 거듭 뜨거운 찬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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