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인술 유출"|의료인 이민 실태와 그 원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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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민의 건강을 맡고 있는 의료인의 해외 유출이 심각한 문제로 되고 있다.
딴 분야에서는 우리 두뇌가 귀국하려는 경향조차 보이고 있는데 반해서 많은 의료인들이 이민 형식을 취해서까지 외국으로 나가고 있다. 금년 연말까지 약 2백명이 해외로 이민할 것 같고 외국에 가있는 의료인의 상당수가 돌아오지 않을 기미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재미 한국 의료인 2백여명은 영주권을 신청했다고 한다. 특히 지난 4월 개정된 미국정부의 이민법은 세계 각국의 의료인들의 이민을 쉽게 하고 있어 더욱 많은 의사들의 미국이민이 예상되고 있다.
「익스체인지·비자」로 외국에 나간 의료인들이 지난 62년이래 해마다 증가하다가 최근에 와서 갑자기 줄어들고 있는데 (표 1)이는 까다로운 「익스체인지·비자」대신 이민을 택하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익스체인지·비자」로 가는 경우는 대체로 1년이 기한으로 되어 있고 4번의 계약 연장을 할 수 있어 5년을 머무르는게 통례로 되어 있다. 그러나 5년이라 하더라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을 거쳐야 하므로 (한국에서 거친 인턴 과정이나 레지던트 과정은 인정을 않기 때문) 전문의 시험도 못 치르고 돌아와야 되는 것이다.
즉 어느 정도의 연구를 한다거나 전문의가 된다거나 따위의 뜻을 펴보기엔 시일이 너무 짧아 아예 이민 형식을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나라의 경우는 거의 무제한으로 인턴을 받아들이고 있으니 더욱 쉽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2백여만원이 소모된다는 의사 과정이나 약5백만원이란 막대한 경비가 필요하다는 레지던트 과정을 끝낸 사람들도 이 길을 바라보게 되는데 그 실례를 들면 금년도에 해군에서 전역한 군의관 30여명이 2명을 제외하곤 모두 이민 비자로 나가고 있고 육군에서 전역한 군의관중 약 60명이 역시 이민 비자로 외국으로 떠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각 욋과 대학과 종합 병원 등에서도 계속 이민을 택하고 있어 2백여명을 헤아린다는 비공식 집계까지 나오고 있다.
연세대 의대는 방사선 과장 안승봉 교수, 소아과의 정진영 교수 등 10여명이 이민을 가고있거나 가려고 하고 있고 서울대 의대 마취과의 박경민 조교수, 욋과의 이병붕 강사 등 수명이 이미 나가 있으며 앞으로도 10여명이 이민 비자를 얻어나갈 예정이며 가톨릭 의대 역시 기생충학교실 주임교수 주일 박사 등 7∼8명이 떠났거나 수속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우석 의대는 임상병리과의 고일향 부교수외 5∼6명이 떠나고 있거나 수속을 밟고있는 걸로 알려졌다. 각 의대에서 평균 5∼10명씩, 각 종합 병원 등에서 수명씩이 금년 말까지 미국으로 떠날 예정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면 이들은 왜 조국을 버린다는 비판을 받을 각오를 하고서 까지 이민을 하는 것일까. 과학계의 딴 분야에 비해서는 혜택받는 조건을 갖고 있는 의료인들이 굳이 외국을 가려고 하는데 있어선 「에고이즘」같은 것이 논란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들에게도 그럴만한 구실이 없는 바는 아니다. 마음대로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지 않고 있고 특히 기초 의학 분야의 의사에겐 생활이 보장되지 않고 대학에 있는 젊은 사람들에겐 위가 꽉 차 있는 등 그들의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하게 하는 사정은 본인들에겐 매우 심각한 것이다.
그런데다가 그들이 외국을 간다고 해도 정부가 막을 방법이 없고 보면 의료인들의 외국 이민 경향은 수그러지지 않을지 모른다. 외국에 가는 의료인들의 실태를 분석해보면-. 상당수가 전문 코스를 밟은 사람들로서 한번 외국에 갔다가 최근에 돌아온 사람들이 다시 나가는 경향이 있다.
대개 그들은 말이 적고 생활에 궁핍을 느끼며 소위 재간을 못 피우는 사람들이다. 의협 회장인 한격부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력 수급 현상으로 봐서 유능한 인재를 정책적으로 외국으로 보내「트레이닝」시키는 건 좋으나 갔다가 안오는데는 딱한 사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개업을 하자니 자본이 없고, 외국에서의 수입이 국내보다 낫고, 우리 나라의 교육 기관은 연조에 의해 배치가 되어 있어 비록 실력이 있다하더라도 강사 자리 하나 얻기 힘들고 제대로 연구할 수 있는 시설 구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편 기초학에 대한 지나친 푸대접 때문에 나가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생활을 할 수 없는 처우 (1만원 정도)로 5년씩이나 고생을 하는 인턴·레지던트가 월 6백∼7백 달러를 받으면서 이 과정을 밟을 수 있는 외국을 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작년 5월 의사 정기 신고에서 해외 거주 1백56명에 대한 앙케트에 나타난 것을 보면 이들의 상황을 집약적으로 알 수 있다.
출신 학교를 보면 서울의대 46명, 연세의대 28명, 우석 20, 이화 15, 전남 13, 경북 17, 부산 6, 가톨릭 7, 기타 4명으로 1백56명중 1백1명이 60년도∼69년도 졸업생인 30대. 외국에 가서 하는 일은 레지던트 82, 인턴 3, 취직 26, 공부 13, 비의료직 종사 2명으로 되어 있다. 이중 외국인과 결혼한 사람이 6명이나 되며 그곳의 한국인과 결혼한 사람이 21명이나 되어 귀국후 의사가 없음을 반증하고 있고 실제로 귀국을 원하지 않는다고 대답을 해온 사람이 10명이나 되는 실정.
나머지 역시 귀국후의 취직에 강한 회의를 나타내고 있었다.
우리 나라 의사의 총 인구는 1만3천9백95명으로 국민 대비율이 2천7백93명, 일본의 8백50명, 미국의 6백명에 비교하여 엄청난 차이인데도 유능한 의료인들이 계속 해외로만 나가게된다면 국민 보건은 물론, 의학 교육이 앞으로 난관에 봉착할 것 같다.
끝으로 최근 밝혀진 해외 의료인 수는 다음과 같다.
▲미국…1,055 ▲캐나다…3 ▲서독…24 ▲스웨덴…3 ▲스위스…2 ▲프랑스…2 ▲오스트리아…1 ▲호주…2 ▲일본…84 ▲브루네이…2 ▲싱가포르…2 ▲홍콩…5 ▲자유중국…4 ▲우간 다…59 ▲레소토…7 ▲나이지리아…2 ▲다오메…2 ▲갬비아…2 ▲이디오피아…2 ▲아이버리코스트…2 ▲콩고…2 ▲시에라리온…2 ▲가봉…2 ▲월남…25 ▲안티과…3 ▲가이아나…9 ▲자메이카…21 ▲말레이지아…50 ▲말라위…2
계 1,381

<이봉근·김영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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