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재형저축이 뭔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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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일러스트=강일구 ilgoo@joongang.co.kr

Q 틴틴 독자 여러분, 거리를 지날 때 은행 지점에 걸려 있는 ‘연 4.5% 재형저축 판매’라고 적힌 현수막을 본 적 있나요. 그럴 때마다 어떤 금융상품인지 궁금했을 겁니다. 재형저축이 뭘까요?

A 소개합니다. 재형저축이란 ‘근로자 재산형성저축’의 약자입니다. 근로자로 대표되는 서민·중산층이 재산을 모을 수 있도록 비과세 혜택과 높은 이자를 주는 저축상품이죠. 올해 상반기 가장 주목받은 금융상품이에요. 1995년에 없어졌다가 올해 3월 18년 만에 부활했죠. 정부가 갈수록 낮아지는 저축률(1988년 25%→2011년 2.7%)을 높이기 위해 재출시를 결정했습니다. 저축률을 끌어올려 서민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하는 것은 물론 1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 빚도 줄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다는 취지에서였습니다.

연 1200만원 한도, 의무가입 기간 7년

 서민을 위한 상품인 만큼 가입대상이 연봉 5000만원 이하 근로자나 연소득 3500만원 이하 개인사업자(자영업자), 연간 저축한도는 1200만원으로 제한돼 있습니다. 가입할 때 국세청에서 발급하는 소득확인증명서를 은행에 제출하면 되는데요. 가입하기 전 해의 소득이 기준입니다. 예를 들어 작년 연봉이 5000만원이었고, 올해 연봉이 7000만원이라면 가입이 가능한 거죠. 나이 제한이 없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미성년자도 아르바이트 소득을 근거로 가입할 수 있습니다.

 재형저축의 가장 큰 매력은 비과세입니다. 정부는 일단 2015년까지 비과세 혜택을 주고, 이후 연장 여부를 결정할 계획입니다. 의무가입 기간인 7년(최대 10년) 동안 통장을 유지하면 다른 저축상품에 붙는 이자소득세(15.4%) 중 14%를 깎아줍니다. 1.4%의 농어촌특별세(농특세)만 내면 되는 것이죠. 만기 때 이자가 1000만원이라면 일반 적금은 154만원(1000만원 곱하기 0.154)의 세금을 내야 하지만 재형저축은 이보다 훨씬 적은 14만원(1000만원 곱하기 0.014)을 냅니다. 의무적으로 7년(최대 10년)을 가입해야 비과세 혜택이 있습니다. 장기투자상품인 만큼 중도 해지할 때 불이익이 크기 때문에 가입할 때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7년을 채우기 전에 해지하면 비과세 혜택을 못 받을 뿐만 아니라 이자도 깎입니다.

 재형저축에는 재형적금과 재형펀드가 있습니다. 재형적금은 시중은행·저축은행·상호금융기관에서 판매하는 원금보장 상품인데요. 금리가 다른 적금보다 높다는 것이 매력입니다. 재형적금은 가입 뒤 3년간 연 최고 4.5%의 고정금리를 줍니다. 요즘 은행권의 적금 평균 금리가 연 3%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많이 주는 것이죠. 하지만 4년째부터는 시장금리의 변화에 따라 1년 단위로 금리가 바뀌는 변동금리를 적용합니다. 또 다른 재형저축 상품인 재형펀드는 자산운용에서 설계해 증권사·은행에서 판매하는데요. 주식·채권에 투자해 은행 금리보다 높은 수익을 추구하지만 주가나 채권값이 떨어지면 손실이 날 수도 있어서입니다.

 사실 옛 재형저축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부모님 세대는 연 4.5%의 재형저축 금리를 보고 격세지감을 느끼실 겁니다. 1976년에 처음 생겨 95년에 없어졌으니 아마 여러분 부모님이 옛 재형저축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일 겁니다. 옛 재형저축은 연 10~20%대의 고금리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한참 고성장을 거듭하던 때라 기본 금리 자체가 높았던 데다 정부에서 재형저축 가입자에게 저축장려금을 얹어준 덕분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기본금리 10%에 저축장려금 형태의 우대금리 6%를 더해 16%를 주는 식이었죠.

1976년엔 금리 연 최고 26%, 지금은 4.5%

 이런 장점 때문에 재형저축은 새내기 직장인의 필수 재테크 상품이었습니다. 76년 당시 정부가 재형저축을 처음 도입한 이유는 저축을 유도해 튼튼한 중산층을 늘리는 한편 기업투자금으로 쓰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는 ‘잘 살아보세’란 구호와 함께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었잖아요. 72년 먼저 제도를 실시한 일본에서 성과가 좋자 한국 정부도 76년 전격 도입하기로 한 거죠. 도입 당시에는 월급 25만원(연봉 300만원) 이하 근로자가 가입하면 연 최고 26%의 금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출범 3년 만인 79년에 전체 근로자의 절반 수준(47.4%)이 가입했고 적금액이 84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습니다.

이후 1인당 국민소득이 오르면서 재형저축 가입대상이 85년에는 월급 60만원(연봉 720만원) 이하로 확대됐습니다. 금리도 조금씩 내려가긴 했지만 80년대 20% 초반, 90년대 15%대로 여전히 높아 직장인의 수요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국민소득이 크게 늘면서 재형저축의 인기는 식었습니다. 정부가 저축장려금이 국가재정에 부담이 된다고 판단해 월급 60만원 이하로 제한된 가입대상을 더 이상 확대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결국 정부는 재형저축을 95년 폐지합니다.

 18년 만의 공백을 깨고 돌아온 재형저축은 출시 초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출시 첫날인 3월 6일에만 29만 개의 계좌에 198억원의 돈이 들어왔습니다. 저금리 기조 속에도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던 서민 자금이 대거 몰렸기 때문입니다. 옛 재형저축에 비해 가입대상을 대폭 확대(연봉 720만원→5000만원)한 효과도 있었습니다. 금융권에서도 모처럼 ‘스타 상품’이 탄생할 거란 기대감이 컸습니다. 한 은행에서는 재형저축에 가입할 잠재 수요가 900만 명이라는 분석까지 내놨죠.

 하지만 최근 들어 인기가 크게 떨어진 양상입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까지 재형저축에 가입한 계좌는 총 182만7234개입니다. 3월 한 달간 139만6797개가 만들어졌지만 5월부터는 180만 개에서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인기 하락의 가장 큰 이유는 가입 4년째부터 변동금리를 주기로 한 것에 대한 투자자의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4년째부터 은행이 금리를 크게 내릴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 거죠. 정부가 소득공제 혜택을 새 재형저축에는 넣지 않은 것도 매력을 떨어뜨린 요인입니다.

 은행권에서는 변동금리의 단점을 보완한 ‘고정금리형 재형저축’을 이번 달 출시했지만 이 또한 아직 인기는 별로 없습니다. 최대 10년간 똑같은 금리를 주는 대신 금리 수준이 연 3%대 초·중반으로 낮아졌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재형저축을 활성화하려면 더 많은 혜택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태경 기자
일러스트=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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