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서울대회의 개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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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제37차 국제펜·클럽이 서울대회가 화려한 막을 올렸다. 동구의 유고를 포함한 전세계 34개국에서 2백여명의 문인·편집자들이 참가한 이번대회는 동서문학에 있어서의 해학을 테마로 토론을 벌이는 한편, 아시아문학의 소개를 위한 번역국의 설치문제등 구체적방안도 논의하리라 한다.
피어린 6.25 동란의 비극을 되씹으면서 그 20주년을 엊그제 기념하게된 감회가 미처 가시지도 않은 이때, 우리가 우리 나라에 동서 문필인들을 함께 초청, 해학을 논하는 것부터가 유머를 느끼게 하는 한 풍경이라고도 할 것이다. 또 대회주제가 최종적으로 결정될 때까지엔 해학을 토론의 주제로 삼은 데 대한 약간의 시비도 없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결국 이것이 채택된 것은 각국의 상반된 입장과 정치적 현실을 뛰어넘는 최대공약수적인 화제로서 해학을 가장 본원적인 인간감정의 통로라고 본 한국펜본부 당사자들의 주장이 국제적인 공감을 얻게 된 것임을 지적하고싶다.
언어를 유일한 표현의 수단과 소재로 하는 문학의 세계에서는 그 본질상 다른 어느 문화분야보다 언어의 벽이 두텁기 때문에 항상 국제성과 로컬리(지방성)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는 것이지만, 근래 한 일본 작가의 노벨상 수상등을 계기로, 특히 아시아문학에 대한 국제적인 이해와 평가도 차차 깊어지고 있는 만큼, 이번 모임을 통한 동서문의 교류와 이해증진은 공식토론의 내용이상으로 기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한편, 이번 국제펜대회를 계기로 우리로서는 비단 거창한 국제행사를 빈틈없이 치르고 우리의 문학과 문화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사무적·선전적 효과에만 치중해서는 안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자유롭고 활기있는 문학적 풍토를 조성하는데 모든 문필인과 위정당국자가 몇가지 근본적인 생활의 기회를 가져야할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로, 문화행사의 중요성보다, 문화자체의 존재가치와 사회적효용을 존중하는 사회풍토조성을 위해 특히 위정당국자의 신명이 있어야 할 것으로 우리는 믿고 있다. 새삼 지적할 나위도 없이, 문학은 인간과 사회를 반영하고 포용하려는 생산적인 예술의 한 양식이다. 문학활동이 발랄하고, 문운이 융성하는 사회는 본질적으로 문약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위대한 문학작품을 생산해내는 사회는 강하고 알찬 사회임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작품의 해외소개를 위해 정책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은 좋으나, 그것을 단순한 상품의 수출과 동질적인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겉으로 약간의 선전적 효과는 거둘 수 있을지 몰라도, 진정한 의미의 세계적 평가를 얻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문인들의 경우도 『노벨상을 탈만한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번역·소개가 잘 안되어 국제사회에서 제대로의 평가를 못 받고 있다』는 따위의 안이한 생각만 가지고 있는 한, 해외에서는커녕 국내 독자들의 존경조차 받기 어려울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셋째, 서양사람들에게 쉽게 이해 될 수 있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유형의 작품을 많이 생산해서 소개해야 한다는 이른바 로컬리티 강조론 같은 것도 문학의 정도는 아님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필경 수출상품 품질관리의 사고방식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문학은 본질상 어디까지나 그 나라, 그 사회의 독자를 상대로 하는 것임을 새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이번 대회에 참가한 해외의 문인·편집인들에게는 부단한 북괴도발위협하에 있는 한국이, 전시와도 같은, 이를 태면 극한의 상황하에서 굳이 해학을 의제로 택하기로 결정한 배경이 함축하는 바에 대하여 깊은 이해가 있기를 기대하며, 문학·문화뿐만 아니라 한국이 처하고 있는 정치·경제·사회등 모든 부문에 걸친 현실을 날카로운 안목으로 살피고 통찰해주기를 바라고싶다.
우리는 이번 펜대회의 참가자들이 이런 반성과 건설적인 관점에 서서 피차 세계를 내다보는 시야를 더욱 넓히고, 국제적 감각을 좀더 세련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을 믿으며 충심으로 그 성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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