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통신] 집집마다 실탄 장전 총 1~2정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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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죽은 가족의 영정과 총. 이라크 가정을 찾으면 예외없이 눈에 띄는 두가지다. 23년 동안 전쟁에 시달려온 탓에 집집마다 전사한 사람이 한두 명씩은 꼭 있고 실탄을 장전한 총도 한두 정은 반드시 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남자들이 대부분 총을 반납하지 않고 계속 소지해온 탓이다.

러시아제 AK-47(일명 칼라슈니코프)소총을 비롯해 체코.이탈리아제 권총, 영국제 소총 등 종류도 다양하다. 바그다드에는 총포상이 3년 전부터 등장해 성업 중이고, 총기 관련 장신구도 시장바닥에 널려 있다.

반대로 이라크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은 휴대전화와 e-메일 주소다. 이라크인들은 바그다드 반경 20㎞ 내에서만 통하는 무전기 외에는 무선통신장비를 일절 소지할 수 없다.

외국인도 휴대전화를 국경관리소에 맡겨야만 입국이 허가된다. 개인 e-메일 주소를 가진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라크 정부가 인터넷을 단일 서버(uruklink. net)로 통합해 철저히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라크 정부는 e-메일 주소 유지비로 매년 보통 회사원의 다섯달치 봉급인 10만 디나르(약 50달러)를 가입자로부터 받는다. 바그다드 시내에 있는 60여곳의 PC방에서도 정부 서버를 통하지 않은 e-메일 전송은 금지돼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이들 PC방의 컴퓨터는 종업원들이 사용자를 감시할 수 있도록 탁 트인 공간에 일렬로 배치돼 있다. 기자도 국내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e-메일을 보내려다 종업원의 제지로 포기해야 했다.

현지 유엔 관계자들은 미군의 시가전 계획에 반대하는 이유로 '넘치는 총, 열악한 통신'을 든다. 헛소문에 흥분한 시민들이 총을 들고 미군과 교전하는 불상사가 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월 평균 10달러선의 낮은 임금과 외부 세계와 철저히 단절된 환경 때문에 이라크인들의 생활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그래선지 이들은 광적으로 축구에 매달린다. 이라크에 4개뿐인 TV채널 중 가장 인기있는 채널은 단연 스포츠 TV로, 프로그램의 80%가 축구중계다.

중계를 보지 않을 때는 대부분 한곳에 몰려 사는 친척들을 방문한다. 기자는 시민들로부터 "형, 동생 등 가족이 지척에 사는데 우리만 피란할 수 없다"는 말을 여러번 들었다. 유엔 관계자들은 이라크의 가족공동체적 사회구조도 시가전의 대량살상 가능성을 크게 한다고 걱정한다. 요즘 이라크인들이 외국인에게 던지는 아침 인사는 "굿 모닝?"이 아닌 "굿 뉴스?"다.

'프랑스, 미국의 군사행동 결의안 거부''블릭스 위원장, 파월에게 한방 먹이다'… 이런 제목이 뽑힌 현지 신문을 들고 "잘될 것"을 연발한다. 그러나 불안한 속내를 감추지는 못한다.

'하지(이슬람 성지순례)'기간이었던 지난주, 바그다드에서는 양을 잡아 피를 대문 앞에 뿌리고 액땜을 기원하는 전통의식을 치른 집이 유난히 많았다. 한 외교관은 "양을 잡은 집이 지난해의 배는 되는 것 같다"며 "불안한 민심을 반영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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