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위크 한국어판 기사전문]-4<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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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가 송영오 이탈리아 대사 (당시 그는 외교통상부 본부대기중인 이사관이었다)에게 홍순영 외교통상부장관을 ‘비공식적’으로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한 편지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올해 초 스칼라피노 교수님의 제자를 미국에서 만났습니다. 이 제자는 Mr. Chu라는 사람으로 루스벨트 재단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중국계 미국인 사업가입니다. 그와 함께 2000년 루스벨트 자유상을 저희 대통령이 수상하도록 노력해왔습니다. 저는 당시 박지원 공보수석과 함께 이 일을 추진했으며, 박 수석이 대통령께 보고해왔습니다.

금번 루스벨트 이사장과 전화통화 중 저희가 수상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말을 듣고 현 박지원 장관 (99년 5.24개각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이 됨)이 대통령에게 재차 보고한 결과 홍순영 외통부 장관(편지에 적힌 대로 옮김)이 책임지고 추진하라는 말씀이 계셨답니다. 박장관이 관계서류를 홍장관께 넘기셨답니다.

대사님께 부탁드릴 점은 이 문제로 제가 홍장관님을 한 번 뵙고 싶으니 비공식적으로 주선을 부탁합니다. 참고로 재단에서 보내온 서류를 여기에 첨부합니다.

이편지로 보면 이 프로젝트의 추진과정에 현직 장관들까지 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내용중에 날짜가 기입돼 있지 않았지만 이 편지에서 박실장을 ‘박장관’으로 호칭한 것으로 보면, 99년 6월 이후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김 대통령은 루스벨트 4대 자유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해 7월 필라델피아 자유메달상을 수상하고, 노벨상을 받기 직전인 2000년 11월에는 라프토 인권상을 수상했다.

최씨의 문서들을 통해 당시 정권의 움직임을 짐작해보면, 이런 과정에서또 다른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을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최씨는 99년 2월 노르웨이를 방문해 게이르 룬데스타트 (Geir Lundestad) 교수를 만났다. 룬데스타트 교수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노벨평화상위원회)간사였다.

최씨는 귀국후 이 만남을 김 대통령에게 보고할 것으로 룬데스타트 교수에게 보낸 2월 22일자 편지에서 밝히고 있다. “며칠안에 김 대통령을 잠시 만날 것이다. 이 자리에서 우리가 지난번 오슬로에서 만난 일을 말씀드리면서 교수님이 83년에 하버드에서 김 대통령을 만난 일이 있다는 말씀을 전하겠다. 대통령께서도 기억하실 것이다”는 내용이었다.

노벨평화상위원회는 노르웨이 의회가 선임하는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위원 임기는 6년을 기준으로 하고 재선임도 가능하다. 위원회는 의장과 부의장을 두고 있으며, 노벨학회(Nobel Institute)의 이사가 위원회 간사 역할을 하고 있다.

최씨가 룬데스타트 교수와 주고받은 팩스문서를 보면 두 사람의 관계는 99년 초에서 9월 이후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최씨는 2월 11일 노르웨이로 가서 그를 만났고 이를 계기로 99년 9~10월께 한국 금강산 관광에 초청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나 룬데스타트 교수는 일정이 모두 차 있다는 것을 이유로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벨상 관련 인사로 한국을 찾은 사람은 헬 본데비크(Kjell Bondevik)전 노르웨이 총리 한 사람뿐이었다. 2000년 8월 본데비크 전 총리의 방한도 극비리에 진행됐지만 국회 외교통상위에서 한나라당 유흥수 의원이 ‘노벨평화상 로비설’을 제기하면서 문제시해 세상에 알려졌다.

본데비크 전 총리는 김 대통령이 만든 아태재단에서 분리된 아태민주지도자회의측의 초청으로 개인자격이었다. 하지만 풍문에는 이때 김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간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아태민주지도자회의측은 “본데비크 전총리가 서남아시아 국가를 방문하는 길에 한국에 잠시 들렀을 뿐 노벨상과는 관련 없다”는 논평을 냈다.

최씨가 제출한 프로젝트 별첨자료속에는 노벨위원회 위원 5명의 신상명세도 자세하게 기록돼 있어 어떤 용도로 만들어졌는 지를 짐작케 한다.

2000년말 노벨평화상의 꿈은 이뤄졌다. 그해 6월 남북정상회담의 ‘대업’을 이룬 뒤 성취한 꿈이었다. 물론 최규선씨의 로비가 결정적으로 노벨평화상을 안겨주는 역할을 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이번에 입수한 각종 문건에 드러난 대로라면 노벨평화상 공략을 놓고 최씨의 프로젝트 이외에도 치열한 로비가 전개되었으리라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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