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강경론 급선회 … 미, 시리아 공습 초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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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시리아 내전에 대한 군사 개입을 두고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왔던 미 오바마 행정부의 급격한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미 정부가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로 민간인을 공격했다는 확신을 갖게 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화학무기 연구 시설 공습 등 제한적 수준의 군사 작전 실행이 임박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유력 언론들은 25일(현지시간) 일제히 “미국과 동맹국들이 시리아 군 시설 타격 등을 검토하고 있다”며 “정상들의 태도가 이전보다 훨씬 강경하며, 계획도 한 단계 진전된 상태”라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서구 고위관료를 인용해 “미국과 영국·프랑스는 알아사드 정권이 다시 화학무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면 이번에는 군사 대응을 해야 한다는 강한 입장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또 “이르면 이번 주에 작전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갑자기 강경해진 백악관의 입장 급선회는 전날인 24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안보회의가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의에서 지난 21일 구타 지역에서 300명 이상을 숨지게 한 화학무기 사용의 주범이 알아사드 정권이라는 확신이 공유됐고, 군사 작전을 위한 여러 선택지가 함께 논의됐다는 것이 NYT의 설명이다. NYT는 특히 안보회의에서 이번 참사를 ‘화학무기의 무차별적 사용’으로 규정한 것에 주목했다.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참혹한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자 오바마도 더 이상 시리아 정권의 시간 끌기 전략에 끌려다니지 않겠다고 결심을 굳혔다는 것이다.

  25일 시리아 정부가 유엔 화학무기 조사단의 현장 방문을 허가한다고 발표했지만 미 정부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미 현장이 오염돼 쓸 만한 증거는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며 “신뢰를 담보하기에는 너무 늦은 결정”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NYT는 “오바마가 주말에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연속적으로 통화한 것 역시 이들이 미국과 같은 수준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군사 작전에 나선다 해도 지상군 투입이나 대대적 공습보다는 막강한 화력을 동원해 일부 주요 목표를 집중 타격하는 ‘치고 빠지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NYT는 “백악관에서는 이미 공습 타깃 후보지들이 회람되고 있다”며 “작전이 현실화한다면 해군함에서 크루즈 미사일을 쏘는 방식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

 군사 작전 절차에 대한 논의도 진행 중이다. WSJ는 고위급 관료를 인용해 “미국은 유엔의 지지를 받는 것을 가장 선호하며, 상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버티고 있는 유엔 안보리의 승인을 받는 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나 아랍연맹(AL) 등 지역 파트너들과 협력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 WSJ의 설명이다. 유엔 헌장 제7장과 제8장은 지역 평화를 위해 지역 안보기구가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근거조항이 되고 있다.

 미국의 군사 작전이 임박했다는 징후는 시리아는 물론 러시아 등 알아사드 우군들이 맹렬한 비판에 나선 데에서도 포착된다. 알아사드는 26일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베트남전을 예로 들며 “시리아를 공격한다면 미국 앞길엔 실패뿐”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도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명의로 경고성 성명을 내고 미국의 자제를 촉구했다.

 한편 유엔조사단이 26일 다마스쿠스 인근 화학 무기 공격 지역을 방문해 부상자를 면담하고 관련 증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조사단은 이날 현장으로 이동 중 신원불명의 저격수들로부터 총격을 받았다. 마킨 네시르키 유엔 대변인은 “조사단 차량 한 대가 정부군과 반군 장악 지역 사이의 완충 지대에서 수차례 피격당했다”면서 사상자는 없었다고 밝혔다.

유지혜·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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