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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에 대한 예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문공부에서는 국기·국가에 대한 예절을 범국민적으로 계몽키로 한다는 신문보도를 읽고 반가운 마음과 함께 생각나는게 있어 몇자 적어본다.
축구 월드·컵쟁탈전에 예선전때의 일이다.
날로 높아가는 축구열로 서울운동장은 입추의 여지가 없이 관객으로 채워져 있었다. 더구나 외국과의 대전이라 응원에도 열을 올려 모든 입장객에게 태극기를 한장씩 나누어주었다. 태극기를 흔들며 열심히 응원하고 있을 땐 모두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솟아, 단결된 힘이 사람 사이사이를 누비었다. 더구나 우리팀이 한골을 넣을 때마다 태극기를 흔들며 모두들 일어나 환호성을 푸른 하늘에 띄우는 것은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장엄함과 아름다움이었다.
그런데, 경기가 끝나고 모두들 일어서서 나올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방금까지 손에 들고 있었던 국기는 어느새 스탠드에 휴지처럼 하얗게 버려져 있는 게 아닌가. 수많은 국기는 초라하게 바람에 날리며 사람들의 발아래 짓밟혀지고 있었다.
왜 국기를 소중히 하지 않을까? 설령 소중하게 간직할 줄 모른다 해도 돌돌 말아서 그냥 들고 나갈 수는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경기에서 이기는 한골만 생각하고 자기 나라의 국기가 밟혀 버리는 사실엔 하등 관심이 없었다.
일본에 한골 질땐 분노를 느끼며 씩씩거리는 사람은 있었을 지언정 태극기가 버림을 받고 있는데 울분을 터뜨린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긴다는 건 뭘까. 스탠드에 꽉 차있던 사람들이 마구 밀려 밖으로 나올 때 태극기를 들고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때의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에 무슨 외국팀과 경기가 있다면 또 그 사태가 될까봐 겁이 난다.
자기 나라의 국기가 게양되고 내릴 때는 물론이고, 외국 국기가 게양될 때도 가던 걸음을 멈추고 엄숙히 경의를 표한다는 외국 사람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무슨 식전에서만 국기에 대한 경례가 엄숙하고 그 이외는 난 모른다는 식이 되면 정말 안될 것 같다.
그리고 어린이에게 국기에 대한 사랑과 존엄성을 가르쳐 주는 것은 국가에서, 학교에서 뿐이니라 집에서 먼저 부모가 솔선하고, 지도해야 될줄 안다. [한진선(주부·서울영등포구상도동130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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