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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때부터 굳힌 지도력|영 보수당수 히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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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동당이 쉽사리 승리하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집권가능성을 굳혀가고 있는 영국 보수당의 에드워드·리처드·조지·히드당수(54)는 더글러스·흄 전수상으로부터 보수당을 떠 맡은지 불과 5년.
1916년 켄트의 보드스테어즈에서 출생한 히드당수는 옥스퍼드대학 음악과를 졸업, 2차대전에 참전한후 50년 하원의원에 당선됨으로써 정계에 데뷔했다.
이든-맥밀란-흄의 3수상이 재임하던 시절을 당료로서, 관료로서 비교적 운좋게 지낸 히드당수는 융통성이 없고 인간적 매력이 다소 결여된 점을 제외하면 별로 흠잡을 데 없는 정치인으로 평가되어 왔다.
대개의 다른 정치인과 비교되는 점은 그가 활동적인 면과 내향적인 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그는 책벌레인 성실한 급장으로, 처음에는 많은 친구들에게서 따돌림을 받기까지 했으나 그의 활동적인 성품은 스스로 학생회장에 나서 반대파 학생들을 포용함으로써 융화력을 보였다.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히드는 여러가지 조건이 있어야 당선되는 옥스퍼드·유니언(학생회) 회장에 당선되었다. 젊은 시절에 보여줬던 그의 지도력은 정계에 나선 후에도 그대로 드러나 50년 처음 하원의원에 당선된 지 불과 2년만에 보수당하원 원내총무의 중책을 맡았다.
맥밀란 수상 시절의 노동상, 흄수상 시절의 상무상을 지낸 경력은 그가 나중에 보수당의 리더가 되는데 도움이 됐다. 그러나 그가 보수당수로 취임했을 때 일부에서는 반발도 없지는 않았다. 그의 인간적으로 냉정한 면은 당시 보수당이 내건 근대화구호, 즉 특권층의 추방, 계급의식의 추방, 당운영의 서민화에 차질을 초래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장신에다 위풍도 당당하며 음악과 사색을 즐기는 히드당수는 61년에는 런던·심퍼니·오키스트러의 대표도 역임했다.<정규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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