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진 이시단의 거성 옹가레티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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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로마=정신규통신원]살바토레·콰지모드·에우제네오·몬탈레와 더불어 이탈리아의 3대 서구시인의 한사람인 주제페·옹가레티옹이 지난 1일 기관지염으로 밀라노에서 사망했다. 향년 82세. 로마의 성 노렌조성당에 그의 유해가 안치되자 전세계의 문학계에서 보내는 조의가 그치지 않았다.
그는 1888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수에즈운하 건설당시 이주한 이민의 아들로 태어나 1912년 파리의 소르본대학에서 공부했다. 14년 귀국하여 1차 대전에 참가했고 신문사의 특파원으로도 활약했다. 37년∼42년까지 브라질 의 상우파울루대학에서 이탈리아어·문학을 강의했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와 58년까지 로마대학에서 현대문학을 가르쳤다. 49년 로마대상을 수상했으며, 62년에는 유럽 작가협회 회장을 지내기도했다. 임종에 가까와서도 그는 작품활동을 계속했다.
파리시절 랭보 말라르메등의 영향을 아폴리네루와의 교분으로 시적 상징과 신비를 공감하여 상징주의에 가담했다. 그는 서정적인 본질과 순수시의 고독을 썼다. 그는 대화의 가능성 자체를 원하지 않는 고립으로 존재에 대한 성실과 가식이 없는 양심의 소리를 경청하기위해 외면보다 인간의 보편성에 중점을 뒀다.
퇴폐주의의 파장과 파상적 미의 가면을 벗기려는 강한 의지로 표현의 가치를 발견했다. 이런 표현방법과 언어의 탐구, 인간의 능력자체와 존엄을 찾는 문제가 그의 작품세계를 지배했다. 기억의 연상, 감정의 필요를 경시하여 고뇌를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피조물로서의 불가항력, 무에서 재출발하는 필연성을 보여줬다.
그의 사상을 담은 시집 『즐거움』(31년 밀라노에서 발간)은 인간으로서 그가 고민하는 순간을 말하고있다.
『즐거움』이후 한때 부정적이기까지 했던 그의 시 세계는 고통과 감정의 한계를 찾는 데까지 계속되어 『11음절의시』를 시도했다. 『참된 전통의 바탕위에서 정적인 언어를 구사하여 종교적인 반감을 노래했다』고 프르티나리교수는 그의 시 세계를 종합하여 평했다. 고통·죄의식·외침·전쟁·아들의 죽음·브라질에서의 체험등 그의 경험의 소산은 시의 소재로 승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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