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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우문현답’이 필요한 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37호 31면

2년 전 기자생활을 시작하며 처음 배운 건배사는 ‘우문현답’이다. 우매한 질문에 현명한 대답이라는 뜻인 줄로만 알았는데 다른 뜻이 숨어 있었다.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뜻이었다. 지난 한 주 무상급식을 취재하느라 여러 현장을 다녀오고 난 뒤 ‘우문현답’을 체감했다.

 무상급식으로 학교 시설물의 개·보수를 못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으레 나이 든 학교장들의 보수성이 발현된 것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기자와 만난 한 학교장은 만나자마자 A4 용지 하나를 불쑥 들이밀었다. 무상 정책 때문에 필요한 곳에 예산이 쓰이지 못한다는 내용이 담긴 타 언론사의 기사였다. 기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뽑아놓고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는 “조금 과장된 면도 없지 않지만 이 기사를 보고 무릎을 쳤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무상급식을 한다고 세금을 더 걷는 게 아니지 않느냐. 무상급식 이후 시설 개·보수 비용이나, 다른 교육 예산들이 확 줄어든 게 몸으로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교육현장에서 무상급식에 찬성하는 목소리도 일부 있었지만 확실히 소수였다. 젊은 영양담당 교사는 “앞으로 예산에 물가상승분이 반영되지 않으면 단가가 낮아져 질 나쁜 급식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특정 학년만 무상급식을 하는 곳에선 혜택을 받지 못한 학년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을 걱정했다. 석면이 섞여 있는 교실 천장의 텍스를 교체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이도 있었다. ‘무상급식’과 ‘석면 섞인 텍스’가 오버랩되며 무엇이 더 중요할까 따져보게 됐다.

 또 있다. 대부분의 학교 관계자들이 실명을 내걸고 말하지 못한 부분이다. 이들은 ‘익명’ 보장 여부를 거듭 확인했다. 예민한 문제에 익명을 요구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 정도가 심했다. “현장을 둘러보고 싶다”는 요청에 경기(驚氣)라도 일으키듯 전화를 끊어버리는 학교도 있었다. 경기도의 한 학교장 얘기다. “다들 만나보면 불만이 많다. 하지만 교육감이 저렇게 목숨 걸고 추진하는데 누가 나서서 말하겠느냐. 앞에선 가만히 있지만 뒤에서는 모두 교육감 안티가 된다.” ‘진리는 공개된 곳에서 자유롭게 표현될 때 살아남는 독특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한 존 밀턴의 ‘아레오파지티카’를 들먹이지 않아도 의사소통이 중요하단 걸 우리는 안다. 현장의 목소리 자체를 묵살시킬 정도로 ‘무상급식’ 명분에 경도돼 있지 않았는지, 합리적인 비판도 ‘정치색’을 입혀 매도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42.195㎞의 마라톤 경기에서도 중간중간 물은 마시지 않나. 2009년 이후 확대돼온 무상급식 정책에도 중간 점검이 필요하다.

 “내년 무상급식 지원 예산을 삭감하겠다”는 경기도청의 발표 이후 무상급식 논란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이들에게 적당한 건배사를 하나 추천하고 싶다. 바로 ‘우문현답’이다. 무상급식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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