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두 칸짜리 없나요”에 원룸 오피스텔 찬밥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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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전셋값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가운데 2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의 부동산 중개업소 밀집 지역에 매물 시세표가 붙어 있다. [뉴스1]

부동산 시장이 딜레마에 빠졌다. 아파트 전세 물건은 없어서 난리지만 오피스텔은 공급량이 넘쳐나 골치다. 같은 오피스텔이라도 원룸(one room)형은 아예 찾는 이가 없지만 투룸(two room)형은 물건을 찾기 힘들 정도다.
전셋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면서 한동안 발길이 뜸했던 경매시장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미분양 아파트도 지역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대기업에 다니는 김영범(28)씨는 서울 신림동 서울대 캠퍼스 인근의 ‘대학가 원룸’에서 산다. 8평 규모에 전세 보증금 2000만원, 월세 45만원짜리다. 월세와 전세가 섞여 있는 소위 ‘반전세’다. 직장 근처에도 원룸형 오피스텔들이 있긴 하지만 보증금이 1억원에 육박해 부담스러웠다. 대학가 원룸보다 월 5만~10만원가량 관리비가 덜 든다는 것도 감안했다. 김씨는 “꼭 값 비싼 오피스텔에 살지 않아도 큰 불편이 없다”며 “결혼할 때 작은 아파트라도 사려면 거주비용이라도 효율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월세는 대세” … 오피스텔 찾는 이 없어
월세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비중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지만 오피스텔·원룸 같은 수익형 부동산 시장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발표한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도권 지역의 주택 월세 거주 비율은 23%로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8년 이래 가장 높았다. 전세 대신 월세를 선호하는 집주인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피스텔 같은 수익형 부동산을 가진 사람들은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

경기도 일산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오피스텔 한 채씩을 갖고 있는 김성호(48)씨는 “일산 오피스텔은 5개월째 비어 있는 상황이고 강남 것만 최근에야 겨우 입주자를 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장 다음달부터 강남에서 받은 월세로 비어 있는 일산 오피스텔의 관리비를 내야 할 판”이라며 답답해했다. 오피스텔 시장은 대부분 전세보다 비싼 월세 물량이어서 인기가 없지만 최근 공급까지 넘쳐나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오피스텔 미분양 물량도 늘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신규 분양 오피스텔 401곳 중 188곳이 미분양 상태로 남아 있다. 지난해 1만3560실이었던 오피스텔 입주 물량은 올해 3만2064실, 내년 4만131실로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웬만큼 수요가 늘지 않는 한 미분양 상태가 해소될 가능성은 낮다. KB국민은행 박원갑 부동산 전문위원은 “2011년 말 이후 오피스텔 가격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며 “자투리 땅을 개발해 짓는 오피스텔은 아파트와 달리 언제라도 지을 수 있기 때문에 공급 탄력성이 커 가격이 올라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1인 가구 대책 치중하니 원룸뿐?
수요와 괴리를 보이는 부동산 공급도 최근 전세난의 원인으로 꼽힌다. 원룸보다 인기가 좋은 투룸형 오피스텔엔 찾는 사람이 넘쳐나지만 공급은 원룸형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대표적이다. 부동산정보업체 에프알인베스트먼트에 따르면 올 들어 5월 말까지 공급된 오피스텔 중 원룸형은 전체의 85.9%인 반면 투룸형은 14.1%에 그친다.

부동산 업계에선 그간 주택 시장에서 비중이 낮았던 방 두 칸짜리 ‘투룸형 주택’이 뜨고 있는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데다 2~3인 가구까지 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이가 있는 20, 30대 직장인들에게는 딱 맞는 수요다. 하지만 공급은 이에 못 미친다. 사실 정부는 주거난 해소를 위해 1인 가구가 주로 쓰는 전용면적 30㎡ 이하 원룸 주택 공급에만 힘을 쏟아왔다. 지금까지 지어진 1~2인 가구용 도시형 생활주택은 20만 가구 이상이다.

미분양 아파트도 인기 지역 외엔 ‘한숨’
아무리 집 구하기가 어려워도 미분양 아파트라고 해서 사람이 다 몰리는 것은 아니다. 최근 빠르게 줄고 있는 미분양 아파트 추이를 보면 시장의 수요가 몰리는 지역이 어디인지를 알 수 있다. 수도권 등 인기 지역을 제외하면 여전히 냉랭하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전국의 미분양 아파트는 6만5072채로 올해 1월 말(7만5180채)보다 1만 채 이상 줄었다. 특히 서울시내의 미분양 아파트는 올해 초 3415채에서 2722채로 줄어들어 20% 넘게 급감했다.<그래프 참조>

특히 당장 입주가 가능한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2만7194채로 1월 말(2만8248채)보다 1054채나 줄었다. 하지만 지역별로 희비는 갈린다. 같은 수도권이라도 상대적으로 거주 여건이 좋은 서울지역 내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1월 말 1232채에서 6월 말 869채로 줄었지만 인천광역시는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이 2398채에서 2870채로 되레 늘어났다.

수도권 경매시장은 회복 조짐이 뚜렷하다. 부동산 경매정보 전문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20일 현재 수도권 아파트의 건당 평균 응찰자 수는 6명으로 조사됐다. 평균 응찰자 수는 취득세 감면 혜택이 끝난 지난 6월 5.6명으로 줄어들었다가 7월엔 5.7명, 이달엔 6명으로 다시 늘어나고 있다. 낙찰가율(경매물건 감정가 대비 낙찰가격의 비율)도 상승 중이다. 지난달 서울 지역 아파트의 경우 낙찰가율은 79.09%로 올 1월(74.6%)보다 4.49%포인트 뛰어올랐다. 서울 지역 아파트의 낙찰률(경매물건 중 낙찰물건의 비율)은 1월 33.45%에서 지난달에는 36.09%로 올라갔다. 경매에 나오는 아파트 10채 중 거의 4채가 새 주인을 찾았다는 이야기다. 지지옥션 측은 “주택 수요자들이 경매시장에 다시 관심을 보이는 것은 시세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라며 “최근엔 전세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값에 아파트를 낙찰받는 경우도 종종 눈에 띈다”고 말했다.

고가 부동산 경매시장선 사무실·상가 인기
아파트 경매시장에는 전세난에 놀란 주택 수요자들이 몰리고 있는 반면 감정가 10억원 이상 고가 부동산 경매시장에선 큰손들의 투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이 주로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아파트보다는 사무실과 빌딩, 오피스텔 같은 수익형 부동산. 당분간 아파트 매매가 약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거주용 부동산을 사놓고 집값이 오를 것을 기다리느니 당장 임대수익을 얻을 수 있는 수익형 부동산에 거액을 투자하는 쪽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 들어 이달 6일까지 진행된 감정가 10억원 이상의 부동산 경매 중 사무실이나 오피스빌딩 같은 업무시설의 낙찰가율은 90.58%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66.59%)보다 큰 폭으로 뛰어올랐다. 상가 등 상업시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55.25%에 그쳤던 낙찰가율은 올 들어 62.48%로 뛰었다. 특히 서울 지역 내 상업시설의 낙찰가율은 69.71%까지 올라갔다.

이에 비해 고가 단독·다가구 주택의 경우 수도권 지역의 낙찰가율이 65% 선으로 전년 동기보다 10%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감정가 10억원 이상 아파트와 주상복합의 전국 낙찰가율도 71.4%로 전년 동기(71%)와 큰 차이가 없었다. ‘전세대란’의 영향으로 찾는 손길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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