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진 성장, 더 떨어진 일자리 창출 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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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광다이오드(LED) 반도체를 만드는 중견기업 S사는 최근 4~5년간 대규모 설비투자를 했다. 1년 매출(8500억원)의 절반이 넘는 5000억원가량을 새 공장과 사옥을 짓는 데 투입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중 임직원 수는 2000명에서 2100명으로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고가의 생산설비로 제품을 자동 생산하는 시스템을 갖춰 신규 생산인력에 대한 수요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2009년 3억5000만 달러였던 수출이 지난해 5억 달러를 돌파했지만 연구개발 쪽을 빼곤 사람을 많이 뽑지 않을 계획”이라며 “늘어나는 수출은 2006년 중국에 세운 공장에서 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 일자리 2005년 10.8명 → 2011년 7.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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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경제의 ‘고용엔진’이 급속히 식고 있다. 안 그래도 지지부진한 수출과 투자·소비가 그나마 일자리로 연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성장동력을 확충해 파이를 키우면서 동시에 일자리를 지키고 늘려야 하는 과제가 더 무거워졌다. 2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 경제의 평균 취업유발계수는 2005년 15.8명에서 2011년 11.6명으로 낮아졌다. 불과 6년 새 4.2명(25.6%) 줄었다. 취업유발계수는 수출이나 생산·투자·소비의 경제활동이 10억원 늘 때 직간접적으로 만들어지는 일자리의 수를 말한다. 일자리 창출 능력이 가장 많이 떨어진 건 수출이다. 2005년엔 수출이 10억원 늘 때 10.8명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다. 2011년엔 이 숫자가 7.3명으로 32.4%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소비와 투자의 취업유발계수는 각각 19.9%(19.1명→15.3명)와 21.6%(15.3명→12명) 줄었다.

 고용엔진이 느려진 데엔 한국 경제의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작용했다. 산업 전반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고도화한 것이 빛이다. 롯데마트는 2009년 국내 유통업계 처음으로 첨단 발주-재고-진열관리 통합 시스템을 도입했다. 진열된 상품이 부족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생산업체에 물량을 발주한다. 이에 따라 각 점포에서 상품 발주에 걸리는 시간이 2시간에서 10분으로 단축됐고, 발주를 담당하던 직원도 20~30% 줄었다. 이우기 한은 투입산출팀장은 “정보기술(IT)이나 자동차처럼 자본 투입이 많은 수출기업의 발전 속도가 빠르고 다른 산업에서도 자동화 시스템이 확산돼 인력 수요가 적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성 노조 기피 해외공장 투자 늘어

 일부 강성노조와 원가 부담을 피하려는 기업들의 해외 투자는 그림자다. 한 디스플레이업체의 국내 고용증가율은 2000년대 연 15% 선에서 최근 10% 선으로 둔화했다. 생산공정을 자동화·무인화한 탓도 있지만 신규 인력 채용에 대한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해외에서 생산하면 인건비 등 각종 비용을 당장 낮출 수 있는데 국내 투자를 늘리기는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고용엔진을 되살리기 위해 서비스산업 육성과 신성장동력 발굴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인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제조업 위주의 대기업 수출 주도 성장의 바통을 중소기업과 서비스산업이 제대로 이어받지 못한 탓”이라며 “서비스산업을 활성화하고, 고용 기여도가 큰 중소·벤처기업 육성을 도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제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통로인 고용을 지키기 위해 노사정이 협력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벤처·서비스산업 새 동력 키워야

유병규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단장은 “기업은 고용 유지와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노조와 정부도 생산성 향상과 투자여건 개선을 통해 일자리를 지키고 늘리는 데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현철·이태경·조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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