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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수술, 환자가 원해도 못 받는 시대 오나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결혼 6개월차였던 이순정(32.가명) 씨는 월경과다로 산부인과 검진을 받았다가 8cm의 자궁근종을 발견했다. 추가검사를 받았던 병원 2~3곳 모두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이 중 한 병원에서 자궁 기능을 최대한 보존해 임신가능성을 높이는 수술법으로 로봇 자궁근종제거술을 권했다. 이씨는 고심 끝에 의료진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이 씨는 작년 1월 수술 후 6개월 뒤 자연임신에 성공해 지난 5월 건강한 딸을 순산했다.

박수진(34.가명)씨는 불규칙한 생리로 찾은 산부인과 검진에서 14개의 크고 작은 자궁근종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회사 업무로 수술을 미루다 3개월 뒤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자 박 씨는 로봇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개복수술을 받으면 회복기간이 최대 8~9주까지 걸리는 반면 로봇수술은 회복이 빨라 업무복귀를 앞당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박 씨는 지난 3월 수술 후 2일째 되는 날 퇴원해 업무에 복귀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씨와 박 씨처럼 자궁근종 치료에 로봇수술을 받을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 로봇수술이 포괄수가제가 적용되는 7개 질병군 중 '자궁 및 자궁부속기수술(자궁근종, 난소종양, 나팔관)'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로봇수술이 이대로 포괄수가제에 포함되면 적정수가 반영이 어려워 사실상 자궁근종수술에서 퇴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관행수가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가를 받으면서 수술을 강행할 의료기관은 없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산부인과학회가 포괄수가제 당연적용(7월)을 앞두고 복강경수술 중단을 선언했던 당시에도 이런 우려는 제기됐었다.

의료계에 따르면 치료기구, 재료비, 유지비 등 평균 1건의 로봇수술에 투입되는 고정비용은 500만~600만 원 선으로 파악된다. 이는 인건비를 제외한 최소비용이다. 이를 감안해 비급여수가는 통상 800만~1000만원 수준에서 형성된다.

하지만 로붓수술에 대한 포괄수가(급여)는 아직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현재 의협, 병협, 관련 학회, 소비자단체, 복지부, 심평원, 식약처 등 관련 기관·단체들이 모여 질병군전문평가위원회를 통해 로봇수술의 포괄수가제 제외(비급여 인정) 여부, 적정수가 등을 논의 중이다.

복지부는 23일 질병군전문평가위 회의에서 결론을 도출하면 27일 열리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안건으로 상정해 의결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논의가 수월치 않은 상황이다. 의료계는 백내장수술에서 초음파검사를 비급여로 인정하는 것처럼 로봇수술도 예외조항(비급여 수가)으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소비자단체 등은 포괄수가제 취지를 감안할 때 로봇수술을 제외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맞서고 있다.

로봇수술이 포괄수가제로 유지될 경우 현 비급여 수가가 충분히 반영될 가능성은 상당히 낮은 것으로 파악된다. 그만큼 건강보험 재정이 추가로 소요되기 때문이다. 현 복강경수술 수준으로 결정된다고 가정하면 1/3~1/4 수준으로 떨어지는 셈이다. 복강경수술 수가는 210만~370만원 선이다. 이렇게 되면 로봇수술의 수요는 많아지지만 공급이 끊기게 된다는 것이 의료계의 우려다.

한 질병군전문평가위원은 "현재 로봇수술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현 비급여수가를 반영하자니 포괄수가가 큰 폭으로 올라 녹록치 않고, 또 포괄수가제에서 제외해 비급여를 인정하기엔 반발이 너무 크다"고 전했다.

"일부 로봇수술 필요, 환자선택권 보장해야"

로봇수술의 비용효과성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자궁근종 비용효과성에 대한 연구를 계획 중이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복강경수술로 접근이 어렵거나 복잡한 위치의 근종에 대해 개복수술과 로봇수술이 효과적인 것으로 판단한다. 복강경에 비해 수술의 자유도가 높기 때문이다. 특히 이 중 개복을 원치 않거나 수술 흔적을 작게 남기고 싶은 환자에 한해 로봇수술을 권한다. 자궁근종수술의 경우 대상은 대부분 가임기의 젊은 여성이 된다. 산부인과에서 시행되는 로봇수술 중 자궁근종수술은 60%에 달한다.

아주대병원 로봇수술팀 백지흠 교수(산부인과)는 "복강경이나 로봇 모두 구멍을 뚫어 몸 안에서 수술하는 점은 비슷하지만 근종의 크기나 개수, 위치에 따라 복강경으로는 굉장히 어려운 수술이 많다"며 "반면 로봇수술은 개복수술처럼 편리하면서도 상처를 작게 남길 수 있고 회복이 빠른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 미국 NIS 통계. 개복수술 비중은 줄어드는 반면 로봇수술 비중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미국에서는 개복수술 비중은 급격히 줄어드는 반면 로봇수술 비중은 그만큼 늘어나는 추세다. 미국 NIS(Nationwide Inpatient Sample, 미 전역입원환자표본) 통계에 따르면, 2000년 65%에 달하던 개복수술 비중은 산부인과 로봇수술에 FDA 허가가 내려진 2005년 61%로 감소했고, 2010년 36%까지 내려앉았다. 이에 반해 로봇수술은 2005년 0.2%에서 5년만에 19%(2010년)로 급속도로 늘었다.

백 교수는 "로봇수술이 도입된지 얼마 안돼 복강경수술과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복강경수술을 하던 의사 입장에서는 로봇수술로 그 한계가 극복되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며 "따라서 자궁근종수술시 나이가 젊고 자궁을 살리기 원하는 환자들에게는 여유가 있다면 로봇수술을 고려해 볼 것을 권하게 된다"고 말했다. 로봇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는 모두 복강경수술을 해왔던 의사다.

그는 이어 "의학적으로 필요한 수술인데 현 포괄수가 수준에서는 할 수가 없게 된다"며 "적어도 필요한 사람, 원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선택권을 주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환자들의 목소리도 다르지 않다. 로봇수술을 경험한 환자의 경우 필요성을 호소한다. 작년 11월 로봇수술로 자궁근종을 제거한 임현경(34.가명) 씨는 "복강경으로는 수술이 불가능했고 개복은 수술 후 불임 등 위험부담이 많아 로봇수술을 선택했다"며 "비용을 제외하면 크게 단점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 씨는 이어 "자궁근종 위치에 따라 임신 여부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가임여성이라면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만약 정부 정책으로 인해 환자가 원해도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적어도 비용문제는 환자들이 선택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질병군전문평가위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사다. 로봇수술을 포괄수가제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결론이내려지면 로봇수술은 현행 그대로 유지된다. 반대로 포괄수가제에 포함될 경우 어떤 형태로 적용되든 로봇수술이 위축되는 것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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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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