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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 천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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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천국은 신이 지배하고, 지상은 김이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인류는 이미 기원전 7백년에 금을 화폐로 쓰기 시작했다. 리디어의 기게스왕조는 오늘날 그 유적을 보여준다.
낙랑시대(BC108)의 출토품중에서도 금제품이 발견된 것은 황금에 대한 우리 선조의 애착을 짐작하게 한다. 신라시대에 이르러선 금관과 같은 찬란한 솜씨로 꽃피었다. 이 지상에 쌓여있는 금은 IMF보고에 따르면 6만3천t에 이른다. 이 중에 개인퇴장은 20%. 세계의 금생산고는 연간 약 1천5백t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남아프리카·소련·캐나다에서 그 80%를 독점한다.
금의 가치는 새삼 금광석의 품위에서도 엿볼 수 있다. 1t의 암석속에 4g의 금만 포함되어있어도 채굴할 가치가 있는 품위로 판정한다.
한국의 지금은 한은에 3t이 보관되어있다. 시중에서 거래되는 금은상 재고는 약 11t으로 어림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연간 금수요는 15t을 헤아린다. 금채굴량은 겨우 2t, 따라서 2t의 공급부족이다. 그러나 공급부족은 연연 가중되고있다. 시국만 조금 이상해도 시중의 골드·러쉬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금은 마치 시국의 성감대처럼 여겨진다.
그뿐만 아니다. 금의 개인퇴장현상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화폐가치가 불안하고, 신용질서가 어지러울수록 화폐는 금의 모습으로 안방의 깊은 곳에 은신한다. 여기에 부채질을 하는 것은 소비성향의 상승이다. 금반지, 금팔찌, 금목걸이, 금귀고리, 금배지니 금브로치, 금수저, 금쟁반…. 금은상의 쇼·윈도는 바로 허영시장의 그것이다. 금의 천국은 한국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우리 나라는 금의 천국답게 금값도 세계 최고를 기록한다. 국제시장의 표준가는 1온스당 35달러 정도. 그러나 한국의 금시장가는 71달러15센트를 호가한다. 두배가 넘는다. 유럽의 금시장거래가 39·69달러(온스당)로 쳐도 31·38달러나 비싸다. 금밀수의 천국이 한국인 것은 당연하다.
금의 밀수루트는 레바논·루트, 홍콩·루트, 유럽·루트가 알려져 있다. 이번에 적발된 김포공항 금괴밀수단은 유럽·루트의 일맥인 것 같다. 독일인까지 동원된 것을 보면 그 대규모조직을 능히 알 수 있다.
한국은 황금이 아니라, 검은 금이 지배하는 나라-. 불쾌하고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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