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지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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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나의 제자에게 결혼상대자의 조건을 물었더니 건강 용모 가정환경도 좋아야하지만 적어도 대학은 나와야하지 않겠느냐라는 것이다. 일생의 반려자로 삼을 사람의 조건으로 지식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나는 그에게 여성은 지식보다도 지혜스러워야한다고 말하였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대학을 나오지도 않은 여성을 아내로 맞이하면 친구의 부인과도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창피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만 실소하고 말았다.
오늘날 지식을 추구하는 나머지 지혜스러운 것을 경시하는 경향이 보인다. 각급학교에는 카운슬러제도가 있어서 학생들의 개인적인 문제를 교수들이 상담하고 있다. 실망속에서 방황하는 학생들에게 용기와 자신을 되찾게하고 희망과 보람을 준다. 이 경우 학생들은 카운슬러를 담당한 교수들에게 지식을 배우러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길을 새로 잡기위한 지혜를 얻으러 오는 것이다.
대학은 지식을 추구하고 지식을 전수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 생각하여 본다면 대학은 대학이 가진 지혜를 국가와 사회에 주는 기관이기도 하다. 만일 국가와 사회가 대학의 지식과 지혜를 외면하거나 또는 대학이 대학의 지식과 지혜를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데 인색하다면 이는 이조말엽에 있었던 쇄국주의와도 비유될 신판쇄국주의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5·16혁명후 대학교수들이 대거 정부시책 입안에 참여함으로써 대학의 지식과 지혜가 국가재건에 이바지되는 줄 알았더니 그후 대학교수들의 머리가 온통 굳어져있고 텅 비어서 보잘 것 없고 쓸모없었더라는 말이 들린다. 이리하여 대학의 지식과 지혜는 정부와 절연되고 말았다.
오늘날 이 나라는 급속히 변혁되어가는 세계의 조류속에서 중진국으로의 발돋음을 치고 있는 중이다. 그 어느때보다도 국민적인 지혜가 요망되는 시기다. 우리 국민은 국민의 소망을 정부와 그리고 국민이 뽑은 선량에게 부탁하고 국가적 지혜가 선량들이 모인 국회와 그리고 정당의 뒷받침을 받고있는 정부로부터 용솟음쳐 나오기를 기대하며, 이 나라 중흥의 기틀과 중흥에 대한 신념과 중흥으로 향하는 국민적 노력이 집결되기를 그 어느때보다도 요망하고있다.
만일 정부가 목전의 다급한 건설과 전시효과, 그리고 안일한 관료행정때문에 대학의 지혜를 외면함으로써 국가의 한 모퉁이에서 솟아나는 사회악을 가려내지 못하고 산업입국을 가로막는 벽을 보지못한다면 그것은 결혼상대자를 구하는 남자가 지혜스러운 여자를 외면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오늘날 대학교수들의 머리는 굳어져있거나 텅비어 있지도 않다고 본다. 더구나 대학의 지혜는 죽어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동면을 강요당하고 있거나 갇혀있을 뿐이다. [윤세원 경희대공대학장·물리학]

<금주부터 필진이 바뀝니다>
김성근(서울대사대학장·서양사)
알버트·슈미트(신부·외대독어과강사)
이호철(작가)
윤세원(경희대공대학장·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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