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학살 현장 찾은 메르켈 "슬픔과 부끄러움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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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59) 독일 총리가 20일 오후(현지시간) 다하우 나치 수용소의 담장 앞에 굳은 표정으로 섰다. 담 위쪽에 새겨진 숫자 ‘1933~1945’ 아래에 꽃다발을 내려놓고 고개 숙여 묵념했다. 12년간 수만 명의 유대인·폴란드인·동성애자·정치범 등이 ‘신성한 국가 건설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스러져간 곳이다.

 다하우 수용소는 독일 남부 도시 뮌헨에서 북서쪽으로 약 16㎞ 떨어진 곳에 있다. 나치가 만든 제1호 강제 노역장이다. 독일은 나치의 만행을 고발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기 위해 이곳을 보존해 왔다. 하지만 이 나라의 역대 총리들은 한 번도 그 곳을 찾은 적이 없다. 다른 수용소는 방문했어도 이곳은 피했다. 독일의 상징적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방문한 적(2010년 호르스트 쾰러)은 있지만 유권자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킬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정치적 실세인 총리들은 참배를 꺼렸다. 수용소가 있는 독일의 바이에른주는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지역이다.

 메르켈은 야당의 반발을 무릅쓰고 방문을 강행했다. 수일 전 총리의 행차 계획이 알려지자 녹색당의 레나테 퀴나스트 당수는 “분별 없는 행동”이라고 공격했다. 그는 “의도를 의심받지 않으려면 선거운동 기간을 피하라”고 요구했다. 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쇼’라는 비판이었다. 다음 달 22일 메르켈의 3선 여부를 가름 짓는 총선이 치러지는 독일에서는 선거운동이 한창이다.

 메르켈이 정치적 계산에 따른 행동을 했을 수도 있다. 그가 이끄는 기독교민주당(CDU)은 불어나는 이주 노동자 등에 대한 불만으로 독일민족민주당(NPD) 등 극우 세력으로 보수 표가 흘러가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메르켈은 다하우 수용소에서 “이곳은 출신과 종교, 성적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권리를 빼앗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경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나치주의 확산에 대한 경계심도 표현했다.

 하지만 메르켈이 수치스러운 과거사를 상기시킨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1992년 여성·청소년부 장관 시절에도 다하우 수용소에 헌화했고, 2008년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에는 유대인 학살 추모관을 찾아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에는 독일 중부 지역의 부헨발트 수용소로 안내하기도 했다. 그는 올해 초 “우리는 나치가 자행한 범죄와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 그리고 대학살(홀로코스트)에 영원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BBC 방송 등에 따르면 메르켈은 기념관을 둘러보고 방명록에 서명하며 약 15분간 다하우 수용소에 머물렀다. 그는 “슬픔과 부끄러움을 함께 느낀다”고 말했다. 총리 방문을 추진해온 다하우 수감자위원회 회장인 93세의 생존 피해자 막스 만하이머가 휠체어를 타고 역사적 순간을 지켜봤다. 그는 그곳에 함께 끌려온 부모와 부인 등 5명의 가족을 잃었다. 다하우 수용소는 1933년 3월 군수품 공장터에 당시 뮌헨 경찰청장이었던 하인리히 히믈러가 만들었다. 훗날 나치 친위대 사령관을 지낸 히믈러는 이곳에 유대인과 정치범 등을 가둬놓고 강제 노역을 시켰다. 1945년 4월 이 지역을 점령한 미군에 의해 수용자들이 풀려날 때까지 약 20만 명이 이곳에서 처참한 생활을 했다. 그중 4만1000명가량이 학살·기아·질병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돼 처형된 유대인도 많았다. 이 생지옥을 만든 히믈러는 1945년 5월 영국군에 생포돼 포로 신세가 되자 자결했다.

 한편 다음 달 초 요아힘 가우크(72) 독일 대통령은 현직 독일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나치가 대학살을 자행한 프랑스의 오라두르쉬르글란 마을을 방문한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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