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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2)|퇴색하는 권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삼강오륜이 인간행동의 근본으로 지켜지던 대가족 제도 속에서의 노인들은 가정이나 사회에서 연로자로서 존경을 받으며 편안히 모셔졌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발달과 해방후 물밀 듯이, 밀려들어온 개인존중의 자유주의 사상은 결혼한 자녀의 독립과 분가를 주장하게 되었고 효를 백행지본으로 삼던 전통적인 가치관과 윤리관은 붕괴되어 노인의 권위는 점차 퇴색하기 시작했다.
40대, 30대, 20대 부인에게 집안에 중요한 문제가 생겼을 때 집안 어른의 의견을 어느 정도 참작하느냐고 물었다. 40대부인은 『어른의 의견이 과히 틀리지 않는 한 그대로 따른다』고 말한다.
30대 부인은 『다소 참작은 하지만 최종결정은 우리부부가 해야한다』고 말한다.
20대의 갓 결혼한 새색시는 『아직 그런 일은 당해보지 않았지만 우리 부부의 일이거나 앞으로 갖게 될 우리 아이들의 문제라면 구태여 노인들의 의견을 참작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어른의 의견을 참작하는 정도로 미루어 보아도 집안에서 노인의 권위는 날이 갈수록 빛을 잃어 감을 볼 수 있다. 거의 절대적으로 어른의 의견에 맹종하던 전통적인 권위구조인 부모위주로부터 부부위주로 이동하고 있는 사실은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한편 이화여대 사회학과에서 60세 이상의 노인 l백3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노인들의 생활태도를 분석해보면 노인들 스스로가 무모한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려는 의도를 간파할 수 있다.
결혼한 자녀들이 부모와 같이 살아야하는 질문에 무학의 노인은 자녀가 결혼 후 부모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나 국민학교이상의 교육을 받은 노인부터는 점차 따로 살아야한다는 비중이 커지고 전문 및 대학교육을 받은 노인에 와서는 거의 90%가 따로 살아야 한다는 항목에 찬의를 표하고 있다.
이것은 지식수준이 높아질수록 노인들 스스로가 피차간의 자유로운 생활을 위해 권위를 내세우기를 삼가고 「모셔지기」를 피하려는 의도가 짙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이 전연 다른 두 세대-노인과 젊은이-가 생활을 원만히 조화시켜 가기란 그리 수월한 일이 아니다. 우선 경제나 주택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뿌리깊은 유교사상의 잔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우리 나라의 국민감정으로는 더 어려운 문제이다. 앞으로는 차차 부부중심의 핵가족제도로 변천하여 노인과 따로 산다고 하더라도 당분간은 두 세대 이상이 함께 살아야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므로 서로가 양보하여 바람직한 가족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노인의 입장에서의 사고방식으로는 일단 자기를 주체로 한 시대는 지나간 것이므로 생활의 중심을 젊은 부부에게 물려주고 되도록 간섭을 피하며 따뜻한 눈으로 후견해주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인은 장래에 대한 불안과 신체적인 부자유, 생활력의 무능 등으로 인하여 성급하거나 감정이 틀어지기 쉬우므로 젊은 부부 쪽에서는 슬기로움으로써 노인의 마음에 변화를 주고 노인을 가족의 일원으로서 모든 가족내의 활동에 참여시켜 자칫 외로와지기 쉬운 노인의 연약한 감정을 달래주고 소외감을 갖지 않도록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 가족문제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물론 옛날같이 노인에게 맹종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노인에 대해 존경하는 태도로 연로한 경험자에게 모든 일을 상의하는 정도의 대접은 필요하리라고 본다.<김민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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