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공개 2차전 비화 담긴 아이크 전시문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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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드와이트·D·아이젠하워 전시문집』이 앨프리드·챈들러와 스티븐·앱브로스 공편으로 나왔다.
존즈·홉킨즈·프레스 간 5권 3천1백1면 75 달러의 이 책은 군인 아이젠하워의 전모를 엿보게 하는 것은 물론 2차대전의 비화를 들춰내 주목되고 있다.
이 책은 원래 사가나 학자들의 자료용으로 계획 됐으나 노병들이나 퇴역군인들에게 흥미를 주고 있으며 군 지휘자의 마음씨와 특징에 대해 흥미를 갖는 사람들에게도 널리 읽히고 있다.
2차 대전을 통한 아이젠하워의 문서더미에서 문집을 골라내 엮은 이 책은 주와 색인까지 붙여 만들어냈다.
전방 사령실에서 지휘관이 본 전쟁·작전·전략·병사·병참·정치 등 전쟁전반을 수임하는 복잡한 임무를 다루고 있고 아이크의 개인적인 편지나 메모도 포함돼있다.
그는 흥분하는 일이 드물었지만 처칠, 몽고메리, 드골, 패톤과 같은 날카로운 성격을 가진 사람과 충돌하곤 했다.
그러나 아이크는 거의 자기 생각대로 일을 처리했으며, 이것은 자신의 설득력과 루스벨트와 마셜의 끈덕진 지원에 의한 것이었다. 전쟁 중 아이크의 지침은 독일 군을 섬멸하는 것. 이 연합군의 첫 과제라는 사실이었다. 전쟁수행에 있어서는 정치적 고려가 언제나 제외됐었다.
이 때문에 유럽의 침공가능지역을 개척하자는 처칠의 주장이나 1944년 내에 전쟁을 끝맺기 위해 베를린 집중공습을 감행하자는 몽고메리의 주장이 묵살되었다.
처칠은 브리타니 항구들을 공격하자고 주장하고 노르망디 상륙 후 남쪽에서부터 프랑스를 공격하여 이탈리아와 발칸을 위협하자고 주장했었다.
아이크와 몽고메리 사이도 친근한 것은 아니었다. 파리 이후에 몽고메리는 아이크의 해임을 주장했을 뿐 아니라 넓은 전선대신 좁은 회랑을 통해 베를린을 공격하자고 주장했었다.
아이크는 먼저 독일의 공업시설을 파괴했으며 나중에 나치군을 무찔렀다.
그에게는 베를린은 전략상 실제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크의 전략의 결과 소련군이 베를린에 먼저 들어왔으며 전쟁은 45년까지 계속되었다. 발지 전투는 몽고메리의 전략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나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아직도 아이크와 몽고메리의 전략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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