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전세제도 질서 있는 퇴장을 고민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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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월세는 넘치고 전세는 씨가 말랐다, 50주 연속 치솟는 ‘미친 전셋값’, 전세금을 못 돌려받은 수도권 깡통 아파트 6000가구…. 요즘 요란하게 쏟아지는 ‘전세대란’의 경보음이다. 전국 370만 전세 가구들은 깊은 시름에 잠겼다. 이대로 가면 강제로 반(半)전세나 월세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집주인만 나무라기 어렵다. 이미 집값 하락으로 손해를 본 데다 앞으로 집값이 오른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시중금리가 워낙 떨어져 집주인 입장에선 전세금을 올리거나 은행 이자의 2배나 되는 월세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내놓은 전세대출 한도 확대는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다. 오히려 연 4%의 저리대출로 전세금을 쉽게 올리게 하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전세대출 급증으로 가계대출의 위험도 높아진다. 이미 5개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은 10조원에 육박해, 4년 전에 비해 10배나 늘었다. 물론 전세제도는 언젠가 퇴장해야 할 운명이다. 오르기만 하던 집값이 변곡점을 맞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향후 주택정책의 초점을 전세에 맞추고, 질서 있는 출구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전세대란의 근본적인 처방은 주택, 특히 임대주택 공급을 확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한 중장기 해법인 데다, 자칫 주택이 과잉 공급되면 집값 폭락을 불러 부동산 담보 대출이 위험해질 수 있다. 일부에서 단기처방으로 거론하는 전셋값 상한제도 부작용이 크다. 시장을 왜곡시켜 전세 물량이 사라지거나 월세 전환을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중장기적으로 주택공급을 단계적으로 늘리면서, 단기적으론 전세 수요를 어떻게 매매 수요로 분산시킬지 고민하는 수밖에 없다. 집을 살 수 있어도 전세를 고집해 전세대란을 부추기는 경우는 막아야 한다. 또한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를 완화해 매매 수요와 전·월세 물량을 늘리는 방안도 고민해볼 때다. 임대사업자에 대한 편견도 깨야 한다. 이들이 주택을 매입해 임대물량을 적극 늘려야 전·월세 시장의 안정을 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