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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이것은 8·15해방 후 미군정 때의 일이다. 당시 입법의원에서는 반민 법안을 상정하고 누가 민족반역자이고, 아닌 것을 토의하였는데, 하루는 박건웅이라는 의원이(그후 이북으로 간 공산분자)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갑자기 기괴한 발언을 하였었다. 즉『동경의 이왕은 왜 자살을 하지 않았는가? 그 같은 민족반역자는 마땅히 죽어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그 기사가 난 신문을 읽고 혼자서 분개하였다.
『영친왕(이왕) 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 말을 한단 말인가? 민족반역자라는 것은 자기의 영달과 이익을 위해서 국가와 민족을 팔아먹은 것을 가리킴인데 영친왕으로 말하면 국가와 함께 운명을 같이한 최대의 피해자가 아닌가? 더구나 영친왕은 열 한 살 때에 허울좋은 「볼모」로 일본에 끌려간 사람이니 그분에게 대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하고 괘씸해서 펄펄 뛰었던 것이다.
그 이튿날 남대문안 상동 예배당 근처를 지나가려니까, 누구인가 뒤에서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돌아다보니 바로 그 부근에서 양화점을 경영하는 김모씨였다.
그는 큰길가에 있는 양화점에서 일을 하다가 유리창 너머로 내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급히 쫓아 나온 듯, 숨을 헐떡거리며『김 선생님 여 봅쇼(그는 꼭 이렇게 말한다). 그래 박건웅이라는 놈은 제애비도 에미도 없단 말입니까? 그래 영친왕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왜 죽지를 않았느냐고 그런 답니까? 김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구 왕가의 은혜는 아무 것도 입은 것이 없는 놈입니다. 그렇지만, 인정상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하고, 분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인심은 천심이라 더니, 사람의 마음은 다 같은 모양이었다. 그의 말과 같이, 김모씨의 집은 대대로 조정으로부터 아무 것도 은총을 받은 일이 없고 오히려 천대를 받으며 불우하게 살아온 사람임을 생각할 때 나는 더욱 그의 아름답고, 인정이 있는 마음씨가 고마와서 새삼스럽게 그의 얼굴을 우러러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영친왕은 누구에게서 들었는지(혹은 신문에서 보고 알았는지도 모른다) 전기 박건웅의 발언내용을 잘 알고있었으며 다만 단 한사람이라도 자기에 대해서 그런 생각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매우 마음 괴롭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박건웅 보다도 김모씨의 이야기를 역설하였다.
즉 박건웅은 공산주의자라는 특수한 인물이지만「김모씨」는 전형적인 한국의 서민이라 단연 그 수효가 많으므로 박의 망발 따위는 조금도 개의할 필요가 없음을 되풀이해서 역설했으나 영친왕은 볼모 건 아니건 거의 일생을 일본에서 지내고, 일제의 육군중장까지 되었다는「콤플렉스」(열등감) 때문에 좀처럼 마음이 풀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어서 조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과는 달리 통일이 되기 전에는 절대로 귀국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점점 굳어져 가는 것이었다.
1950년­ 즉 6·25동란이 일어나던 해, 2월에 이승만 대통령은 건국 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하였다. 수행원은 외무장관 임병직, 공보처장 김동성, 공보국장 이정순, 그리고 경무대공보비서 김광섭씨가 함께 갔는데 일본을 방문하는 목적은 해방이래 신세를 많이 지고 또 대한민국이 탄생하는 건국식에 참가하기 위하여 일부러 서울까지 와준 연합군 최고사령관 「맥아더」원수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아울러 재일 교포들을 위문격려하기 위함이었다.
이 대통령과 영친왕이 최초의 회견을 한 것은 바로 그때인데 주일대사 신흥우 박사로부터 연락을 받은 영친왕은 방자 부인과 함께 당시「긴자」(은좌) 4접목「핫도리」「빌딩」4층에 있던 주일 대표부로 가서 이 대통령을 예방하였는데 그 자리에는 임 외무장관과 신 주일대사도 참석하였다. 영친왕이나 이 대통령은 다 같은 전주 이씨였으나 한편은 신흥 국가의 대통령이 된 승리자였고, 한편은 구 왕실의 황태자로 거의 일생을 일본에서 살아온 한 사람의 볼모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8·15해방으로 고립 무원 하게 된 영친왕은 심중에 무엇인가 기대하는 바가 있었으리라. 그렇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다만『본국으로 오려거든 오라』는 말 밖에는 아무 호의도 온정도 표시하지를 않았고, 가뜩이나 말이 없는 영친왕은 대통령의 냉담한 태도에 더욱 말이 없게 되었다.
영친왕이 이 대통령과의 회견을 끝마치고 주일 대표부를 하직할 때「엘리베이터」를 타는 곳까지 따라나온 사람은 민망한 표정을 한 주일대사 신흥우박사 한 사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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