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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권<민속학자>|의례(1)|초야를 딴 남성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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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많은 문화민족, 특히 동양에 있어서 처녀성은 숭고한 것으로 높이 평가되어 왔다. 수절 정절을 무엇보다도 여성의 정도로 여겼던 우리 한국인으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나 많은 민족들 사이에는 초야권이 남편이 아닌 제삼자에 의해서 행사되는 풍속이 있다.
초야권이란 협의로 해서하면 봉건·미개사회에 있어서 남편에 앞서 처녀성을 제삼자가 선취하는 것을 말하니, 제후·영주·제사·추장 또는 지우·혼객이 담당하였던 것이다.
초야권에 관한 기록은 「헤로도드스」에 나타나거니와 이 풍속은 여러 민족에 전파되어 있으니「유럽」·인도·남북미주·대양주·아프리카·몽고족과 동남아의 제민족 사이에서 행해지고 있었다.
소 아시아의 러시아에서는 제사가 초야권을 장악하고 있어서 거의 직업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터키」의「시바」에서는 격이 각 지방을 순회하면서 초야권을 행사했으나 그 백신은 독신 생활을 해야만 했다. 모로코에서는 혼인날이 임박하면 신랑집에서는 사람을 제사집에 보내어 청해다가 먼저 신부와 동침케 한 후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쿠바의 칼리브에서는 신랑이 첫 날밤에 신부와 지내는 것은 금지되어 있고 동인도에서는 왕도 혼인 후 3일 동안은 왕비를 데리고 올 수가 없으며 그 동안은 승려가 함께 지내기로 되어 있었다.「마라바르」주국에서도 왕비와 왕녀도 첫 3일 동안은 승려와 지내야 했으니 초야권에 있어서는 주권보다도 승려가 상위에 있었으며 그러고서도 승려는 많은 사례금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초야권의 절차는 처녀에 한하며 재혼녀나 과부가 혼인 할 때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몽고에서는 정혼을 하면 처녀의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라마」사원에 가서 승려에 맡기고 돌아 왔다가 2, 3일 후에 딸을 찾아온다. 라마 승들이 병균을 가지고 있었고 초야권 행사 때에 병을 전파시켜 민족의 위축, 멸망을 초래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승려의 초야권 행사가 철저했었던 것이다.「뉴질래드」에서는 추장이 초야권을 가지고 있어서 반드시 한번 추장과 동침한 다음에야 비로소 출가를 한다. 따라서 예쁜 처녀는 일찍 추장의 집을 다녀가 시집갈수 있으나 추하게 생긴 처녀는 처녀를 면하지 못하여 출가가 늦을 수 밖에 없었다. 또「마바르」해안 지방에서는 시집가기 전에 우선 왕한테 가서 8일을 묵었다가 출가를 해야만 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신랑이나 신부가 다같이 영광으로 여겼던 것이다.
인도의「갠지스」강 지방에서는 신부는 시집가기 전에 사원에 가서 찾아오는 신자와 초야를 보냈으며「리미아」의「나사모니아」인은 혼인날밤에 하용과 초야를 보내고 그러면 동침한 하용은 은이나 그 밖의 선물을 주어 축복했다. 뉴질랜든·버마·다마가스카르·아라비아 에서는 신랑의 친구나 혼인식에 참석한 손님과 초야를 보내는 습관이 있다.
또 포리네시아에서는 두 관이 딸을 시집 보낼 때에는 친척과 딸의 남자친구를 불러 향연을 베풀고 그들로 하여금 초야권을 행사케 하는 일도 있다.
이밖에도 마을의 원로나 중매장이 또는 이방인이 초야권을 갖는 수가 있다. 즉「제리」지방에서는 소녀가 자라면 마을의 원로가 초야권을 행사하는 의식을 갖추고 그런 다음에 그 소녀는 비로소 시집갈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원로가 그 권리를 거절하면 소녀에게는 모욕이 되고 망신일 뿐 아니라 시집을 갈 수가 없었으니 큰 걱정 거리였다.
「모로코」의「바바르」족은 혼인식에서 중매장이가 초야권을 행사했으며「마사이」족도 신랑에 앞서 중매장이가 동침했고 만일 혼인을 해서 신부가 처녀란 것이 나타나면 중매장이는 공격을 받을 뿐 아니라 그 마을에서 살수가 없었다고 한다.「마랏가」「버마」에서는 이방인으로 하여금 초야권을 행사케 했으며 인도 하와이, 일본에도 이와 같은 풍속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초야권의 풍속은 왜 생겼는가 하면 처녀는 혼인할 자격이 없으며 파과하므로 비로소 성인이고 완전한 여자라는 생각에서 유래한 것이다.
여기에는 한국이나 중국에서 처럼 처녀의 신성관은 없고 완전한 여인을 추구하는데서 제삼자에 의한 파과를 바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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