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회복' 숙제 남겨둔 박찬호

중앙일보

입력

아트 하우감독은 웃었다. 경기내내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거두지 못했다. 그만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게 28일(한국시간) 경기는 부담이 없었다.

에릭 차베스·미겔 테하다·저메인 다이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은 덕아웃에서 글러브와 배트를 만지며 여유롭게 경기를 관전했고, 마운드에선 마크 멀더가 가볍게 텍사스 레인저스 타선을 막아냈다.

그런상황에서 박찬호는 역투를 펼쳤다. 중심타선이 빠진 경기,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룬 맥빠진 팀과의 경기. 이겨도 그리 좋은 평가를 얻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8회까지 133개의 공을 던졌다. 6년연속 10승, 통산 90승에 1승이 반드시 필요했다.

마운드에 올라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내도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크게 숨을 고르고 힘있게 초구를 던졌다. 그러나 힘있게 맞아나간 타구는 2루타로 연결됐고, 시즌내내 '고질병'으로 취급받았던 초반실점의 악몽은 다시 현실이 됐다. 결국 1회에만 33개의 공을 던졌고 2점을 내줬다. 볼 넷은 2개.

그리곤 2회부터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낙차큰 커브를 앞세워 애슬레틱스 타자들을 압도해갔다. 7회 한 차례의 고비에서 1점을 더 줘 3-0으로 리드를 허용했으나 투구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시즌내내 이어진 애슬레틱스와 초반실점이라는 2개의 징크스를 벗는데는 실패했다.

박찬호가 레인저스와 함께할 시간동안 애슬레틱스는 강팀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영건 3인방'으로 불리는 멀더, 배리 지토, 팀 허드슨은 이미 장기계약을 한 상태며 타자들도 아직 젊다. 또한 천재단장으로 불리는 빌리 빈이 자리를 떠난다고 해도 한동안은 선구안을 유난히 강조하는 애슬레틱스의 팜시스템에서는 박찬호의 유인구를 골라낼 뛰어난 타자들이 올라올 것이다.

애슬레틱스는 박찬호가 아메리칸리그에 있는한 뉴욕 양키스와 함께 반드시 넘어야할 고개다. 그런팀을 상대로 시즌내내 약점을 노출시켰다는 것은 부상을 떠나, 결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한 두팀을 상대로 '킬러'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에이스'라면 언제라도 수긍이 가는 투구가 필요하다. 넘어야할 팀에게 약점을 보이고, 팀의 공격이 시작되기전 점수를 내준다면, 동료들의 믿음을 얻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박찬호는 내년시즌 더 많은 승을 쌓는 것보다, '에이스'라는 이름에 납득이 가는 투구를 펼쳐야하는 큰 숙제를 남긴채 시즌을 끝마쳤다. 6년연속 10승과 통산 90승보다 더 중요한 것을 남긴 셈이다.

Joins 유효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