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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점드러나는「사화전」계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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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문화공보부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사화전」, 즉 사화「시리즈」를 제작, 오는 9월에 전시회를 가질 계획이다. 2백80만원의 예산이 책정돼 있는 이들 사화는 1백50호정도의 크기로 하여 모두 30점이며 교육헌장의 이념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특별히 제작되는 것이다.
문공부는 최근 9명의 사학자를 초대해 이 역사적인 그림을 제작할 대상의 선정에 착수했다.
자문위원은 이선근 김상기 김성근 한우근 이홍직 신석호 김원룡 홍이섭 이은상제씨. 위원들은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50개 항목을 추려 놓았는데 그 소재는 세종대왕의 한글제정, 김유신의 삼국통일, 이충무공의 왜란대첩등이다.
당초 문공부가 이것을 계획하기는 교육헌장을 설명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데 있었다.
그래서 교육헌장을 18개 항목으로 나눠 그에 부합한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①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②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③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④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러한 순서이다.
그러나 자문위원회는 교육헌장에 마라 역사적 소재를 선정하느니보다 우선 중요사건 50항목을 뽑아 냄으로써 그 중에서 실제 작품화할 30항목을 골라 교육헌장의 내용에 합당하게 배열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에 따라 문공부는 문교부와 절충, 교육적인 면에서 검토중에 있다.
문공부는 금주안으로 사화소재를 최종적으로 결정해 서양화가를 중심으로 제작을 위촉하게된다. 전시회가 오는 9월1일∼20일 국립공보관으로 정해져있으므로 제작기간은 8월25일까지. 작가선정은 작가들로부터 제작신청을 받아 지명하게될 것으로 내다보이며, 제작 착수금으로 각각 3만원씩 준비해 놓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처음 계획하는 이 커다란 「사화전」에 대하여 그 제작을 담당할 미술계는 냉담하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첫째 이번 「사화전」의 제작기간은 실제로 3개월밖에 안되어 좋은 그림을 그려낼 수 없다는 점이다.
재료를 수집하고「콤포지션」문제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사화라면 1년쯤의 조사·고증·제작기간을 가져야 한다.
둘째는 제작비의 문제이다. 민족기록화전 때는 착수금 5만원에 작품료 10만원(5백호 내지 1천호)을 지불한데 불과하지만, 재료를 일본에서 직접 구입해 나눠주어 그 수입을 몇 10만원으로 계산할 수 있다.
셋째, 이같이 좋은 조건이 아니라면 사화전의 결과는 뻔하다는 점이다. 감동을 못 주는 형식적인 그림인 민족기록화는 그래서 경복궁창고에 처박혀 버렸고 당초의 제작의도를 날로 상실해가고 있다. 기록화는 그래도 현대를 소재로 한 것이므로 수월한 편이지만 사화의 경우에는 작가의 능력에도 문제가 있다.
사화 30점은 모두 사진으로 복사해서 각급 학교에 뿌려 교육자료로 삼을 것을 구상하고 있는데 과연 그만한 작품이 될까 하는게 미술계의 회의이다. 일시적인 선전효과를 노리는 것이라면 몰라도 영원히 남을 작품을 만들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견해이다.

<트이지 않는 대화…「70년ag전」>
아무런 감동도 받지 못하는 흐리터분한 일상의 시계로부터 잠시나마 우리들의 눈을 신기한 체험의 세계로 홀리게 만드는, 다시 말해서「만남」의 회로로 안내하는「미니멀·아트」의 작업은 사실상 우리들의 전통적 미학에 있어서는 하나의 추태이다. 그러나 그러한「프로세스」가 방법정신으로서 엄연히 서구적 미학이며 또한 그러한 방법정신의 결여가 우리들 전통적 미학의 결여태가 된다면「미니멸·아트」의 작업은 마땅히 우리들 세대가 가지는 중요과제의 하나다.
그러기 때문에 이번 70년의「AG (아방·가르드)전」은 보다 많은 기대속에 개막되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가능성과 현실 즉 환원과 확장의 두 극을 잇는 다리로서의 표상화 작업을 서구 작가는 가교를 몸으로 떠받드는 공병처럼 하나하나 점검하면서 놓아왔다는 것을 감안할 때 불쑥 미술사적 계보를 갖지 못하는 미아의 슬픔을 AG작가들에게서 또한 맛본다. 그러므로 이러한 비체계적 작업은 우리들의 미술사적 문맥을 더 한층 착잡하게 하며 감상자와 대화의 길을 트는데 더욱 불리하게 만든다.
이점을 에누리 하고 보면 대체로 이번「AG전」은 우리들에게 두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하나는 구조미의 개시-서승원·신학철·하종현·김차섭-와 괄호화 작용-김 한·김구림·이승택·최명영·심문섭-이다.
구조미에 있어서 X축과 Y축에 뜨거운 색과 차가운 색을 이용한 동시성「시리즈」, 그리고「메가필름」의「이미지」를 사용한『너와나』의「시리즈」, 김차섭의「1d-A」, 그러나 보다 우리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는 하씨의「작품」마저 대체로 구조적 지향성이라는 점에서 볼 때 인색하고 허술하다.
하씨의『작품』은 서씨의 「드라이」한 수학적 결백성의 효과를 반영체(거울)로써 순수자아의 표상으로, 그리고 거기에「꼴라지」(X레이필름)의 효용성을 가미시킴으로써 구조의 감정인 두려움과 허무를 생생하게「어필」시킨다. 괄호화 작용은 최씨의『변질』, 김씨의『현상에서 흔적으로』, 김한씨의『역행』시리즈가 각각 다른 길에서 공동의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두드러진다. 최·이씨의 경우 석화된 기성관념(사물)의 소멸이라는 점에서 김한씨의『역행』은 석화된「퍼스펙티브」그리고 김구림씨는「모빌리티」라는 점에서 만남(동일성)의 지평을 향해「에폭케」의「메시지」를 전하려고 시도했다.
박동홍<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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