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김찬삼 여행기<인니에서 제7신>|화산도에의 짝사랑「수마트라」에서「자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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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상쾌한 열대아침>
「수마트라」섬의「팔렘방」에서 다음 여행지인「자바」섬으로 건너가기 위하여 기차를 타고 도선장이 있다는「판장」이란 곳으로 갔다. 열대의 아침바다는 정말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기차시간에 맞추어 낮과 밤에 두 차례씩 다닌다는 약 4천t급의 연락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곳에서「순다」해협에 있는「크라카트아」화산도를 둘러보려고 알아 보았더니 이 섬은 화산활동이 심하여 정부의 허가가 있어야 선편을 교섭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연락선 위에서 망원경을 빌어서 먼 빛으로 나마 이 섬을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푸른 바다에 고운 색시와도 같이 도사리고 앉은 아담한 이 화산도는 하나의「인」으로 느껴지는 것은 웬일일까. 임만이 임이 아니라 이런 자연도 모두 임일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인간보다 더 큰 임을 사랑하기 위해서 다니는 여행이고 보니 남달리 환상적인 관찰을 하게도 된다.
세계의 자연치고 매혹적이 아닌 곳이 없지만 이 섬도 내가 학창시절부터 꿈꾸던 곳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포옹하지 못하고 헤어져야 하는 그런 심정이랄까, 보기만 하고 가지 못해 서운했다. 망원경에 비친 임이기에 더욱 아름답게 보였으며 미소년「나르시스」가 수선화로 변모하듯이 이 화산도는「비너스」로 느껴지기도 했다.

<망원경속 비너스>
지금은 아름다운 자연의 여신 같지만 이 섬은 19세기 말 엽에 해중 화산의 폭발로 섬의 4분의3이 달아났고 따라서 해일로 대안에 살던 약 2만여명의 사람 목숨을 앗아간 이른바「불의 여신」이기도 하다. 지금도 연기를 뿜고 있어 선창들은 이 화산을「순다」해협의 표지로 삼고 있다고 한 선창이 말해 주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보니 더욱 그 섬에 가고파서 조타실에 들어가서 그 섬 가까이라도 갈 수가 없느냐고 했더니 그 선창은 껄껄 웃으며 화산 구경도 좋지만 항로를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지 않느냐고 했다. 하긴 이런 곳을 보려면「오나시스」의 호화선은 아니더라도 자가용 선박이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운전석 특별좌석>
그러면 저『방황하는 화란사람』처럼 마음대로 항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섬나라들은 여행하는데는 무엇보다도 선박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것은 부질 없은 꿈.
아침「판장」을 떠난 연락선은 오후 늦게「사바」섬 서쪽의 현관이라 할「메라크」에 닿았다. 여기서 곧「버스」를 갈아타고 서울「자카르타」로 향하였다.「버스」운전사는 외국 손님이라고 반기며 운전석에 앉혀 주었는데 다행히 동북아에서 가장 풍광이 아름답다는 「사바」섬의 자연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 서부지역은「반텐」주로서 옛날부터 오만가지 재난이며 학대며 굴욕을 받은 불행한 땅이다. 더구나 19세기 중엽에「네덜란드」통치때의 저 유명한 강제 재배법에 따라 이 나라사람들이 많은 고통을 받은 당이지만 지금은 전화위복이 되어 농작물들이 무르익고 있었다.

<비참한 소설무대>
이 지역은 이「강제 재배법」에 의한 그때의「자바」농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그린『막스·하페랄』이란 소세의 무대가 된「카랑」화산 산기슭의 마을이 있었다. 이 책은「수마트라」를 여행할 때 구했는데『그들은 남 밭에서 나고, 거기서 자라며 밭에서 결혼하고 또 그 밭에 파묻힌다』는 한말은「자바」농민들의 생활을 단적으로 잘 표현했다. 뿐만 아니라 그 옛날의 역사를 잘 알려주기도 했다. 이 마을은「네덜란드」「스타일」로서 한 가운데는 넓은 광양이 있고「네덜란드」식 말 달구지가 평화스럽게 방울소리를 울리며 달리는가 하면 「이슬람」모자를 쓴 남자들이 저녁 예배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농촌사람들은 한결같이 가난해 보였다.

<이슬람교도의 표정>
그리고 마을마다 초라한 함석 지붕으로 된 건물이긴 하나「이슬람」사원이 있다.「이슬람」교 나라다운 인상이다.
「자카르타」근교에 이르니 시내로 들어가는 차, 소달구지 또는 사람들이 붐비고 있다.「인간의 홍수」로서 과연 세계최고의 인구밀도의 나라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에 가까운 곳이지만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으며 옷도 초라한 것을 보니 분명 가난한 증거가 아닐까. 인구는 이렇듯 많은데 아직 이 나라를 부강하게 할만한 천재는 나오지 않은 탓인가 보다. 어린이들이 보이기에 손을 흔들었더니 외국여행가라고 큰 호기심을 품었는지 뛰어왔다.「이슬람」정신의 하나인 푸짐한「프렌드쉽」을 어린이들도 지닌 듯, 애정이 넘치는 표정들이다. 어두워져서야 이 나라 서울「사카르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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