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솥밥·육회 … 익숙한 메뉴들의 모~던한 변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36호 22면

1 여름철 세트 메뉴에 포함되어 나오는 은어 솥밥, 고추장 육회, 껍질콩 어란 요리.

세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미국 뉴욕에서는 몇 해 전부터 고급 외식(파인 다이닝: Fine dining)으로 한식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세련된 고급 한식당들은 오래전 예약하지 않으면 아예 자리가 없을 정도이고, 유명인들이 찾아와서 열심히 젓가락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이젠 더 이상 귀한 일이 아니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21> ‘이스트 빌리지’의 한식

우선은 한식에 대한 호감도가 증가한 때문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뉴요커 10명 중 3명(31%)이 한식에 대해 ‘마음에 든다’고 응답했다(2011년 농림수산식품부 발표 자료). 이 비율은 고작 2년 만에 무려 세 배나 증가한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근래에 한국의 위상이 높게 올라간 덕분일 것이다.

그리고 더 실질적인 이유로, 한국 셰프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 2012년에 뉴욕의 한식당 두 곳이 고급 식당 가이드북의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점을 받았다. 한식당으로선 처음 있는 일이다. 깨어 있는 셰프들이 옛날 그대로 내려오는 한식에 안이하게 머무르지 않고 진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결과다. 이런 노력들이 모이면서 물이 차서 자연스럽게 넘치듯이 이렇게 미국 중심지 한복판에서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작 본고장인 우리나라에서는 한식이 아직도 파인 다이닝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마음먹고 값비싼 외식을 한다고 할 때 한식보다 일식이나 이탈리아 음식, 프랑스 음식 등이 먼저 고려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특별한 때에는 뭔가 일상적이지 않은 것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감안해도 좀 높은 비율이다. 그만큼 한식이 고급스러운 음식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그동안 계속 높아져 온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한식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2 내부 모습. 인테리어가 감각적이고 현대적이다. 3 외부 모습. 예술가들이 많이 사는 뉴욕의 이스트 빌리지를 본떠 이름을 지은 이유는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적인 요리를 만든다는 의미다.

이미 국내 소비자들의 취향은 세계 수준이다. 고급스러운 외식을 할 때면 당연히 새롭고 인상적인 맛과 세련된 분위기를 원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켜 주는 한식당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맛이 좋으면 분위기가 못 따라오고, 분위기가 좋으면 맛이 특별하지 않은 곳이 많았다.

그러다가 근래에 들어오면서 이런 한계를 극복한 고급 한식당들이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고 있다. 최근 내게 아주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곳은 ‘이스트 빌리지’라는 곳이다.

이곳은 전통 한국 음식을 베이스로 하면서 새로운 재료와 맛을 가미해 새롭게 ‘모던 한식’으로 만들어 내는 곳이다. 분위기도 뉴욕의 어느 세련된 식당같이 멋지고 트렌디하다. 오너 셰프인 권우중(32) 대표가 의욕적으로 만든 공간이다. 권 대표는 대학교에서 정식으로 과학적인 요리를 공부한 정통파다. 우리나라와 일본·뉴욕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개발한 자신만의 한식 메뉴를 바탕으로 2011년 ‘이스트 빌리지’를 열었다.

여기에서 맛보는 한식은 익숙한 듯하면서도 완전히 새롭다. 재료 하나하나는 다 익숙한 것들인데 이것들을 새롭게 배합시켜 새로운 맛, 새로운 느낌이 나는 한식 메뉴로 바꾸어 놓고 있다. 현대미술에서 평범한 재료들을 모아 새로운 예술적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바꾸는 ‘아상블라주(Assemblage)’와 같은 느낌이다.

여름철 한정 메뉴로 내놓은 ‘은어 솥밥’을 보자. 작은 돌솥에 쌀과 모시조개를 넣고 밥을 한 다음 그릴에 구운 은어를 올려서 내왔다. 간장 양념장으로 비벼 먹으면 은어의 부드럽고 담백한 맛과 짭짤한 모시조개의 맛이 밥과 잘 어울려 신선하면서도 아주 새로운 맛이 난다.

육회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고추장 육회’도 인상적이다. 육회를 가늘게 썰어 양념한 고추장으로 무친 다음 여러 가지 새싹과 고수를 얹어 ‘엔다이브’라는 채소 잎에 올려 한 입 요리로 만들어낸다. 기존에 먹던 육회와는 같은 듯 다른 새로운 느낌이다.

‘이스트 빌리지’의 한식은 한마디로 아주 창의적이다. 그러면서도 전통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고 무엇보다 맛이 있다. 한식의 새로운 해석이자 진화다.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가야 한식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고급 음식으로 사랑받을 수 있을지 그 방향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런 새싹들이 잘 자라났으면 좋겠다. 우리도, 세계인도 모두 다 한식을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관심과 애정의 물을 주면서 키워나가는 것은 우리의 음식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이스트 빌리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626-70, 전화 02-790-7782. 세트메뉴 중심이지만 단품도 있다. 일요일은 휴일. 전화예약 필수. 세트 가격: 점심 3만8000~5만원



음식, 사진, 여행을 진지하게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마케팅·리서치 전문가. 경영학 박사 @yeongsview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