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내년 무상급식 예산 전액 삭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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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경기도가 내년도 유치원과 초·중·고 무상급식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하기로 했다. 취득세율 인하에 따른 세수 감소 등으로 대규모 적자가 예상돼 삭감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이를 놓고 “취득세율 인하를 막고 중앙정부의 추가 재정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꺼낸 카드”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경기도는 15일 기존 사업 지출을 올해보다 5139억원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 2014년도 예산편성 방향을 발표했다. 올해 860억원이 잡힌 무상급식 지원금을 내년에 아예 없애고, 도로 건설 등 정부와 함께 예산을 투자하는 사업에서도 2238억원을 줄이기로 했다. 취득세율 인하로 3000억원 세수가 줄고, 복지 확대와 내년도 지방선거에 따른 3300억원 필수 추가지출이 잡혀 있어 기존 사업을 구조조정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경기도 김동근 기획조정실장은 “5139억원을 줄여도 결손이 생겨 1000억원 넘게 지방채를 발행해야 할 듯하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내년에 6000억원 이상 적자를 본다는 얘기다.

 지방자치단체 중에 무상급식 예산을 없애겠다고 한 것은 경기도가 처음이다. 삭감하는 860억원은 올해 경기도 무상급식 예산 7132억원의 12%에 해당한다. 나머지 6272억원은 도 교육청과 기초자치단체가 부담한다. 예산 대부분이 도 교육청과 기초자치단체 몫이라지만 경기도 지원이 끊기면 급식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경기도의회는 반발하고 있다. 도의회 강득구 민주당 대표는 “불필요한 다른 사업을 찾아 예산을 깎아야지 아이들의 밥그릇 예산은 단 한 푼도 깎아선 안 된다”고 밝혔다.

 한양대 유재원(행정학) 교수는 “정말 급식 예산을 없애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절박한 상황임을 정부와 정치권에 보여주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이를 통해 광역자치단체들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취득세율 영구 인하를 저지하려는 목적이라는 관측이다.

취득세율 인하와 관련해 전국시·도지사협의회는 지난달 23일과 지난 11일 “세율을 내리면 지방재정이 파탄난다”는 성명서와 보도자료를 냈다. 정부는 현재 4%인 취득세율을 9억원 이하 주택 1%, 9억원 초과~12억원 2%, 12억원 초과는 3%로 낮추는 세법 개정안을 다음달 국회에 올리기로 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복지를 확대하면서 지방자치단체에 부담을 떠넘기는 데 정면 반발하는 차원에서 무상급식 예산 삭감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 무상보육을 확대하고 기초노령연금까지 도입하면서 재원 일부를 지자체가 부담하도록 하는 바람에 지자체들은 재정 균형 맞추기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한국지방세연구원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 공약에 따라 지자체가 2013~2017년 5년간 추가 부담해야 복지예산이 18조원에 이른다.

 내년에 큰 폭 재정적자가 예상되는 것은 다른 광역지자체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대부분 경기도의 무상급식 예산 삭감 발표가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일단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김상한 예산담당관은 “경기도의 상황이 이해는 된다”면서도 “불필요한 예산은 대폭 정리하겠지만 복지예산은 건드리기 힘들다”고 말했다.

수원=최모란 기자, 손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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