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이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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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958년 유럽으로 가는 도중 홍콩에서 산 초컬리트 색의 보스턴 가방을 귀국 후에 책가방으로 사용하였다. 보통 책가방보다 책이 더 많이 드는 그 37㎝의 가방을 가지고 강의실에 들어가면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어떤 남선생은 지게꾼을 사서 그 가방을 지게 해야겠다고 하고, 또 어떤 가냘픈 여선생은 주인 없는 틈에 힘껏 쳐들었다가 그때 공교롭게 책이 얼마 안든 가방을 안고 뒤로 나자빠지기도 하였다. 이 간단한 보스턴 가방 하나 때문에, 아무 변장을 안했건만 나는 네 가지로 변용 되었다.
①지금은 자동차를 잡기가 어렵지만 10년 전만 해도 형편이 지금과 달랐다. 아침에 보스턴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려고 적선동 골목을 빠져 나오느라면 뒤에서 경적을 울리며 속력을 늦춰 옆에 다가서는 차를 종종 본다. 운전사가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고 타주었으면 하는 눈치다. 그 운전사 눈에는 아마 보스턴 가방을 든 내가 급히 역으로 가는 여객으로 비쳤던 모양이다.
②수업을 마치고 동료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차대신 술이나 한잔 들고 가자고 해서 을지로 대로가의 어느 술집 앞에 당도했는데 여자가 그 문전에서 총채로 먼지를 활활 털고 있고 손님을 들여보내지 않았다. 좀 들어가자고 주의를 환기시키니까 그제서야 그 무뚝뚝한 여자는 먼지를 일으키지 않고 손님 뒤에 따라 들어 왔다. 손님이 자리에 앉아 술을 달라니까 그 술집 여자는 나긋나긋해지고 애교까지 떨면서 요금 받으려온 전기회사원인 줄 잘못 알았다는 것이었다.
③공보부 무슨 위원회에 참석하려고 학교에서 곧장 중앙청으로 가서 정문을 들어서니까, 수위가 내 앞에 가는 사람들은 다 들여보내고 나만 세우고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온순하게 대답하고 덧붙여서 까닭을 물으니 그 제복의 사나이는 올빼미 같이 엄숙한 태도로 내 보스턴가방을 내려다보며 『행상인은 못 들어갑니다』라는 것이었다. 더 말이 안나왔다.
④한번은 종강도 해서 방학동안 한참 못 만날 터이니 어죽이나 같이 먹고 헤어지자고 해서 7, 8명의 강사가 춘천 소양강변 언덕 위의 음식점을 찾아갔었다.
연장자라고 나를 먼저 차에서 내려놓아서 내가 맨 앞장서서 길목을 올라갔는데, 앞에 나와 앉았던 여자가 별안간 탈토와 같이 집으로 뛰어 들어가고 보이지 않았다.
일행이 방에 들어가 좌정하고 접대부들도 들어와 앉았는데, 그 중에 바로 아까 놀라 달아났던 나이 어린 여자도 끼여 있었다.
달아난 이유인즉 접대부 검진하러온 의사인줄 알았다면서 깔깔 웃었다.
물론 사람을 잘못 보는 수도 있지만, 그러나 사람자체를 보지 않고 사람의 부수물인 한 개의 가방을 보고, 제각각 여객, 전기요금 수금인, 행상인, 의사 이렇게 엄청나게 틀리게 속단하니 놀랬다가도 웃을 일이다. [이혜구<서울대음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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