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아…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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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파리는 비가 내렸다. 그러니까 파리는 작년 11월로 접어들 무렵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내일 모레가 4월인데 쭉 꾸준히도 비와 눈이 내렸던 것 같다. 4월이 되면 마로니에의 움이 부풀고 아름다운 광선이 쬐어준다니 인상파회화가 탄생한 것도 그럴싸한 이유가 되리라.
나는 그 아름다운 4월의 파리를 보지 못하고 귀국해야했다. 거리의 카페는 벌써부터 테이블 의자를 문밖에 내놓고 비를 맞히고 있었다. 한달만 더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아카데미·고에스에 계속 나가서 유화를 몇점 더 뗄텐데. 아, 고에스의 그 좋은 분위기. 얼마 후엔 추억이 되어버릴 몽파르나스의 거리. 세계의 젊은 멋장이들이 모여들어 거니는 셍·미셸거리, 좋은 영화만 상영하는 영화관들.
회색하늘에 보얗게 솟은 에펠탑, 그동안 이렇다할 멋진 친구하나 없었지만 그렇게도 분위기 좋았던 파리를 떠나려니 엷은 애수가 가슴을 졸이게 한다. 파리에 있는 동안 화가로서, 한인간으로서 나의 수확은 크다면 컸다고 할 수도 있고 아쉽다면 아쉽기 한량이 없다.
그래서 나는 서울로 돌아가는 마당에 있어서 서울을 떠날 때와는 달리 뭔지 두렵기만 하다. 집으로 돌아가면 푹 들어 박혀서 그림만 그리겠다. 될 수만 있다면 화단과 인연을 끊고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파리에서의 내 생활감정을 지배했던 양극, 사흘동안 죽고 싶은 절망, 이틀동안 살고 싶은 희망, 그와 같은 기분이 교차하는 나날의 고독한 생활이었다.
그건 그림이 잘되고 안되고 하는 컨디션에 달린 작용에서 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한 괴로운 생활을 서울의 우리집에다 이식하는데 성공할 것인지 그게 몹시 두렵기만하다. 설령 성공해서 앞으로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도 프라도 미술관에 걸린 어느 한사람의 작가도 못 따라갈 형편이니 서글퍼진다. <글·그림 천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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