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무버로 도약하려면 해외 한인 과학자 도움 절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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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는 국내 연구소들로 대거 몰려온 해외 한인 과학자들이 1차 과학기술 발전을 이끌었고 80~90년대에는 진대제·황창규 등 해외파 두뇌들이 반도체 신화를 창조했습니다. 우리나라가 ‘퍼스트 무버(first mover·기술선도자)’로 도약하려면 한인 과학자들의 도움이 또 한 번 필요합니다.”

 12일 만난 이기섭(58·사진) 한국산업기술평가원(KEIT) 원장은 명쾌하게 소신을 피력해 나갔다. KEIT가 야심 차게 진행 중인 기술 연구개발(R&D) 과정에서의 한인 과학자 활용사업에 대한 설명을 하던 중이었다.

 KEIT는 정부 R&D 총예산의 13%에 달하는 18억 달러(2조90억여원) 이상의 R&D 자금을 집행한다.

 한인 과학자들의 최첨단 지식과 정보를 활용해 R&D 성과를 극대화하자는 게 이 사업의 핵심이다. KEIT와 국내 기업들이 R&D의 큰 방향을 결정하면 한인 과학자들이 해외 최신기술 동향이나 정보를 토대로 자문이나 평가 역할을 담당한다. 아예 한인 과학자들이 기업의 위탁을 받아 신기술을 직접 개발하기도 한다. 이미 김진상 미시간대 교수가 스마트폰 부품업체인 ㈜엘엠에스의 차세대 휴대전화 렌즈 개발사업에 참여하는 등 상당수의 한인 과학자가 ‘실전’에 투입된 상태다. 이 사업은 8월 8~10일 미국에서 열린 재미 한인 과학자들의 ‘연차 총회’ 격인 ‘2013 한·미 과학기술학술대회(UKC)’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원장은 “100명 이상의 동포 과학자가 참석해 사업의 성격과 참여방법을 문의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물론 국내 과학기술계에선 “아직도 해외 한인 과학자의 도움이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의문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그렇다”고 단언했다. 그는 “국내 기술이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구미 선진국들에 비해 아직 뒤떨어지는 게 사실인 데다 중소기업들은 기술에 접근하기조차 어렵다”며 “특히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들이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격자)가 아닌 ‘퍼스트 무버’로 한 단계 더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운 만큼 이들의 도움이 더욱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중국 해외파 과학자들이 방학 때 일시 귀국해 고국에 선진기술을 전해 준다고 한다”며 “우리도 5000~1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해외 한인 과학자들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욕심이 많다. 그는 KEIT의 우수 인력들을 해외에 파견해 최신 해외 기술정보를 수집하고 국내에 전파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상 중이다. 지역 정보를 수집해 국내에 배포하는 KOTRA의 활동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케이-테크(K-tech) 브랜드의 세계화도 그의 꿈 중 하나다. 케이-테크는 코리아테크놀로지(Korea Technology)의 줄임말로 한국의 기술을 브랜드화하기 위해 KEIT가 만든 용어다.

박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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