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현실사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믿기 어려울 만큼 재미있는 일이 있을 때 소설 같은 얘기라 한다. 거짓말 같은 얘기라고 할 때도 이런 말을 쓴다.
어느 쪽 이나 소설이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얘기라는 뜻 일 것이다.
그러나 소설의 세계와 일상적 세계가 그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요새처럼 기괴한 일들이 흔할 때는 더 그런 느낌이 짙다.
아무리 환상적인 소설이라도 그 소재는 현실 세계에서 찾는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이 소설을 못 보는 경우도 많다.
「괴테」의『젊은「베르테르의 슬픔』이나오자 실연을 한 젊은이들의 자살이 유행했었다.「라스코르니코프」가 그럴싸한 논리로 고리대금 업자인 노파를 죽이는「도스토예프스키」의『죄와 벌』이 나오자, 당시의 관헌은 이 소설의 주인공을 젊은이들이 본 볼까 해서 작품의 발행금지를 명 한일까지 있다.·
그러나「베르테르」가 자살한 것은 실연 때문에서만은 아니었다. 소시민 출신의 그가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3등 서기관 정도 이상으로는 출세 할 수 없음을 비관했다는 점이 사실은 더 크게 작용했던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도『죄와 벌』에서 초점을 둔 것은 노파 살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배후의 주인공의 심리에 있던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사상이란 그저 자기의 행위에 대한 판명을 위해 필요하기만하면 덮어놓고 빌어 쓸 때가 많다. 그리고 명작일 수록에 이런「카무플라지」에 알맞은 사상을 제공하기 쉬운 것이다.
특히 소설은 읽는 사람에 따라 여러 뜻 을 갖게 된다. 여기에 비겨 일상적 사실에는 한가지 뜻밖엔 없다. 그리고 소설은 본떠서 행동한다는 것이 때로는 이상이나 낭만에 따르는 것이라는 착각을 안겨주기도 쉬운 것이다.
이번 JAL기 납북 사건도 일본의 어느 인기작가가 주간지에 개재했던 추리소설의 줄거리를 그대로 흉내냈다하여 새 얘깃거리가 되고있는 모양이다. 다른 것은 그 작품에선 일본도가 아니라「피스톨」이었고, 북괴를「스파이」하려는 이중간첩의 연극이었다는 점뿐이다.
그러나 흥미 본위의 이 작품엔 원래 본뜰만한 사상성이란 없는 법이다. 「베르테르」를 본떠서 자살한 젊은이들에게는 그래도 낭만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범인들에게는 그저 일본의 이지러진 풍토가 낳은 폭력적인 몰 인간성이 엿보일 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